자취하고 나서 상상으로 일하는 버릇이 생겼다. 웃기도 슬픈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저 쓰레기들을 이렇게 겹쳐서 버려야지.' 이 생각을 거의 1시간 동안 하고 마지못해 행동으로 옮긴다. 처음엔 내가 이렇게 오래 시뮬레이션 돌리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어? 나 뭐 하는 거지?'하고 깨달았다.
어찌 보면 게으른 몸과 부지런한 뇌의 싸움인 듯 하다. 부지런한 뇌는 '이걸 치워라, 이걸 닦아라, 이걸 이렇게 정리하라'라고 계속 명령한다. 게으른 몸은 소파에 누워 그저 처리할 것들을 눈으로 바라보고 뇌로 생각만 할 뿐이다.
흠! 나름 확대 해석해보자면, 게으른 몸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시키기 위해, 뇌가 바삐 돌아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결론적으로 행동에 옮길 땐, 몸은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고 그 일을 마무리하는 걸 즐기는 게 아닐까? 보통은 시뮬레이션 돌리는 시간이 1분도 길지만, 자취를 하고 난 후 그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요즘은 1시간 까지도 뇌로만 일한다.
조금 무섭다. 지금은 그래도 먹고 나서 바로 설거지도 하지만, 자취 경력이 쌓이면 '다음 날까지 설거지를 쌓아두고, 온종일 머리로 시뮬레이션만 돌리는 거 아닐까?'하는 무서운 생각을 한다. (뇌가 엄청 지끈지끈 아프지 않을까?)
자취 생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난 정말 생각보다 정말로x2 게으른 것 같다. 뇌 말고 몸이! 나는 우주최강 집순이다. 집순이는 집에 있을 때 가장 할 일이 많다. 런닝맨 재방송도 봐야 하고, 지난주 벌거벗은 세계사도 봐야 한다. 밀린 빨래도 해야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해야 하고, 밥도 직접 차려 먹어야 한다. 그렇게 난 집에서 가장 바쁘고 재밌는 우주최강 집순이다.
다만, 몸은 생각보다 많이 게으르기 때문에 그날 시뮬레이션한 모든 걸 다 행동으로 옮기진 못한다. 다음 날, 다다음 날을 걸쳐 하거나 안 할 이유를 찾아내 자기합리화하기도 한다.
자취하니 나의 본성을 알게 된다. 본가에서 살 때는 엄마가 밥 먹으라하면 먹었고, 가족들이 자는 비슷한 시간에 잤다. 타인과 함께하는 삶에서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다. 결국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사는 방식을 타인의 개입으로 알지 못했던 거다.
그래서 제목처럼 자취하고 새롭게 생긴 버릇이 사실 아니고, 내 본성이 튀어나오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구나!'를 알게 되는 것 같다.
어쨌든 자취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있기 때문에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게 아닐까? 오! 그게 자취의 빅재미 아닐까? (엄마는 자취 경험했으니 본가로 들어오라고 한다. 하지만 난 이 재미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본가로 들어갈 일은 돈 때문 말고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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