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릴 때가 됐다. 아픔에서 헤어 나올 때도 됐다. 애썼으니조금 쉬라는 친구들의 말은 따듯한 마음만 받고, 무언가 다시 시작할 새싹을 틔어보려 한다.
아픔…, 참 오랜만이다. 누군가의 몸을 다치게 하려면 물리적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를 가해야 한다. 그런데 영혼을 다치게 하는 건, 그저 말 한마디… 아픈 한 마디로 충분하다. 그렇게 남에 의해, 내가 아닌 다른 것에 의해… 내 일상이 이리도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참 오랜만에 느꼈다.
한 어른께서 나를 조금 지켜보시곤 하셨던 말씀이 요즘 자주 떠오른다. "효정님, 효정님을 오래 보진 못했지만 몇 번 만나보니 효정님은 옳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 같아요."
처음 들었을 땐, 잘 이해하지 못했다. '옳다'라는 단어가 낯설어서였을까. 사실 지금도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옳다'라는 그 단어는 참 좋았다. 심지어 노력하는 사람이라니… 꽤나 멋진 느낌이었다.
사실 스스로는 지금까지 옳게 살아왔다고 단언할 수 없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그 세상은 사실 내 프리즘에 의해 무지개처럼 좋게 보였던 적이 많았고, 반대로 엉키고 엉켜 검게 타버린 적도 많았으니까.
적을 만들기도, 아픔을 주기도, 돈을 잃기도, 시간과 에너지를 쓸데없는 곳에 쓰기도 했다. 불타는 성격 탓에 나와 내 주변을 자주 불태우는 사람이었으니까.
자꾸 씨앗을 심어도 자라지 않던 이유. 불태워버렸기 때문이었다. 어떤 날은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태우기도, 어떤 날은 마음처럼 되지 않아 나와 함께하는 동료들을 태우기도 했다. 불의 속성을 가진 나는, 그렇게 나와 내 주변을 자주 재로 만들었다.
그렇게 까맣게 작아져 버린 나를 들여다보니, 자신만의 삶의 기준이 없는 약하디 약한 아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맞다. 난 '옳은 삶'을 살려고 했지만, '옳다'라는 나만의 정의를 해본 적 없었다. 그러니, 즉흥적으로 옳다고 판단했던 것들의 결과는 모두 재가 되어버렸겠지.
그랬다. 옳음의 기준을 정립하는 건, 나의 모든 선택의 기준을 정립한다는 것과 같았다. 옳음의 기준이 없으니, 선택의 기준도 매번 달라졌을 것. 그러니 나의 매 선택의 결과는 뿌리째 타버린 갈대였을 것. 더 늦기 전에 나만의 선택의 기준을 정의해야 했다.
아픔을 겪어보니 알겠다. 사랑하는 이들이 약해진 나를 다시 단단히 만들어준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이 아픔을 계단 삼아, '옳다'는 나만의 정의가 갖춰진 다음 계단으로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나에게 '옳다'는 건,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는 것. 나의 선택의 기준도…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는 것. 나도,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고객까지…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을 할 것이다.
선택의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몇 주 전, 난 '나'를 지키는 선택을해야 했다. 첫 번째 선택은 퇴사였다. 매일 밤 자책하며 외로움의 소용돌이에 잡아먹힐 나를 구하기 위한 잘한 선택이었다. 퇴사 다음? 잠깐 일하지 말고 쉴까? 쉼? 쉰다는 그 말에 난 또 왜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걸까. 참… 이것도 병이다.
'나는 왜 쉬지 못할까?'를 생각해 본 적 있다. 정확히는 '왜 나는 쉬는 게 죄책감이 들까?'에 가깝다. 내게 쉰다는 건, 누워서 하루 종일 넷플릭스를 보거나 12시간 통잠을 자는 것들이라 생각했다. 소위 말해, 널브러지고 퍼진 상태였다.
널브러진 날에는 스스로 채찍질했다. 나를 아프게 하려 하지 않으려 해도, 채찍의 강도는 점점 세졌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 진짜 쉼은 다른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나는 또 답을 얻고 싶어, 한자를 찾아보았다.
쉴 휴 休. 나무에 사람이 기댄 모습. 休에는 쉼의 뜻 외에 다른 뜻. '멈추다' 그만두라는 의미가 있었다. 아, 그랬다. 쉰다는 것은 멈추는 거였다. 곳곳에 힌트가 많았는데, 많이도 돌아왔구나.
쉼에 대한 생각의 끝에서 지금 나에겐 '멈춤의 대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무엇을 멈출 것인가. 퇴사하고 일하지 않는 건, 나에게 '일'을 멈추라는 의미인데… 난 일을 정말 사랑한다. 그래서 일을 멈추면 난 아마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休의 진짜 의미는… 나를 괴롭히고 갉아먹는 그것을 멈추라는 게 아닐까. 단순히 널브러지는 게 아니라… 괴롭게 하는 그것을 멈추는 것. 그것이 진정한 쉼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퇴사 다음, 두 번째로 할 선택. 나를 위해 제대로 쉴 것. 일을 멈추는 게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내가 제대로 놀 수 있는 환경에 속하거나 스스로 만들 것. 그것이 나에게 좋은 두 번째 선택이라 믿는다.
함께 생각해 보자. 나는 무엇을 멈춰야 진짜로 쉴 수 있을지를. 그다음, 스스로 갉아먹는 그것을 싹둑 잘라내 보자. 나를 괴롭히는 것을 멈추는 건, 내가 나약해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꼭 기억해 주길. 더 아프기 전에… 늘어진 고무줄처럼 탄력을 잃기 전에…. 그리고 눈물을 닦고 제대로 앞을 보자. 그다음, 나에게 옳은 선택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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