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는 유명한 지각쟁이였다. 그것도 10분 차이로 지각의 경계를 오가는 악질 지각생. 지각하는 습관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그럴 때면 나는 늘 대중교통을 탓했다. '버스가 늦게 와서요...' 어떤 날은 진짜로 버스가 늦게 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둘러대기 위한 핑계였다.
지각의 진짜 이유는 대단하지도 않았다. 늦잠 자거나, 화장실에 오래 있거나,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그렇게 지각을 밥 먹듯이 하던 내가 어느 순간 지각을 많이 줄였다. '핑계'에 대한 생각이 갑자기 180°로 전환되는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정하지 않으니 비겁해지더라. 비겁해지기 싫었다. 그리고 가짜 이유를 말할수록, 점점 그것이 나에게 진짜가 되더라. 처음엔 핑계였던 이유가 진짜라고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 그게 갑자기 너무나도 무서워진 것이다.
지각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할 때도 좋은 성과면 '내가 해서 잘 된 거야!', 좋지 않은 성과면 '외부 변수가...'라고 생각이 뇌에 첫 번째로 스쳤다. 그런 내가 너무나도 구려서 변하고 싶었다.
핑계대는 것에 익숙해지면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핑계만 대는' 몹쓸 인간이 된다. 본능적으로 싫었다. 사실 그것은 참으로 편했으나, 참으로 이롭지 않았다. 그렇게 나이 들기 싫었다. 비겁해 보였고 멋지지 않았기 때문에 난 이런 마음을 철저히 경계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짐 후에도 간혹 지각했다. 하지만 이후 행동은 전과 달랐다. 먼저, 혼자 많이 자책했다. 그리고 상대에게 정확한 이유와 사과를 했다. 그렇게 자책이 쌓이다 보니 그런 나도 못나 보였고, 지각 자체를 하기 싫어졌다. 나에게 지각이라는 행위가 '드디어' 불편해진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레 지각의 빈도가 줄어든 것 같다.
인정하지 않으면 비겁해진다. 핑계로 나를 숨길수록 더 비겁해진다. 비겁해지기 싫어서, 핑계 뒤로 도망치기 싫어서, 나는 인정하고 반성하며 살기로 했다.
부정적인 생각의 끝에서 어떤 감정으로 마무리하는지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나의 한 지인은 부정의 끝에서 늘 '허탈함'을 느낀다고 했다. '인생 살아서 뭐하냐' 같은 허탈함에 도달한다고.
신기했다. 나는 부정의 끝에서 늘 희망을 만났다. 아마도 성격이 낙천적인 덕분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반성'의 끝에서도 절망에 빠지기보다, 늘 교훈을 찾고 희망을 보았던 것 같다. 이런 식이다. '오, 이제라도 알았으니 더 나아진 인간이 될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그럼에도 많은 반성 포인트 중 일부만 사과했던 것은 문제였다. 늦게 깨달아 사과의 타이밍을 놓치기도 하고, 타이밍에 맞추어 잘못을 깨달았더라도 자존심 때문에 사과하지 못해 멀어진 관계가 참 많다. 이 점은 내가 고쳐야 하는데 정말 쉽지 않다.
나는 생각보다 많은 핑계 속에 살았다. '쟤가 먼저 잘못해서' '회사가 기준이 없어서' '피곤해서'... 설사 팩트였더라도 이런 생각이 나에게 하나도 도움 되지 않은 것도 팩트다. 나아갈 방향조차 보이지 않는 핑계 속에서, 교훈은 당연히 코빼기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걸 알게 된 순간, 핑계라 생각되면 가차없이 그 생각을 파괴했다.
어느 날, 대표님과 사업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정확하게는 '대표님, 저 사업하고 싶어요. 근데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라는 나의 걱정에 근간한 대화였다.
그때 대표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효정님, 효정님은 사업을 잘할 거예요. 효정님은 반성을 잘하잖아요. 그게 사업에 엄청난 힘이 되더라고요." 그랬다. 사업도 일도 잘하려면 반성을 잘해야 했던 것이다. 유레카!
반성은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역지사지 易地思之' 특히 서로 상처 준 관계에서 역지사지는 더욱 힘들다. 그래도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면, 나의 말과 행동에 교훈을 반드시 찾더라. 맞네, 생각해 보니 사업도 다 역지사지에서 시작하는 거였다.
비겁해지기 싫어서 반성을 해보니, 더 좋은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에너지 손실을 줄여주더라. 반성하지 않았던 시기를 돌이켜보니, 굉장히 오랫동안 에너지를 쓸데없는 곳에 썼던 것 같다. 심지어 상대를 비난하는 그 부정적인 에너지가 나를 휘감아 내가 좋은 곳으로 가려고 해도 늘 발목을 붙잡고 가로막았던 것 같다.
반성은... 나의 에너지를 쓸모 있는 곳에만 쓰게 해주었다. 그렇게 반성이 나를 무럭무럭 키웠던 것이다.
무엇이든 인정하자. 잘못을 반성하자. 그래야 비겁해지지 않는다. 아플 것만 같던 반성은, 나를 비로소 자유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더라. 반성할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생기는 걸 왜 지금껏 몰랐을까. 반성하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