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였다. 이 글을 발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 그 자체의 뇌를 그대로 받아적은 글. 결정은 계속 유보하고 있는 상태. 나의 혼란을 있는 그대로 꺼내놓았을 때 내가 아닌 타인인, 여러분들이 괜히 걱정하는 건 아닐지... 그럼에도 글 앞에서 솔직하기로 마음먹었던 초심을 떠올리며, 지금이라는 날것을 그대로 적어본다.
퇴사를 며칠 앞둔 지금, 해보고 싶은 것을 나열해 보았다. 음악 만들기, 공간 만들기, 건축 배우기, 물건 만들기... 적고 보니 무언가 만드는 일이 많았다. 그것도 남의 손을 빌리는 게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해야 하는 것들.
내가 경험한 마케팅은 '내가 만들지 않은 무언가를 매력적으로 세상에 보여주는' 역할이었다. 관점이나 범위, 회사마다 마케팅의 영역이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했던 마케팅은 그랬다. 만들어진 것을 매력적으로 세상에 꺼내놓는 것.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 지금까지 했던 일 중 가장 몰입했던 일을 떠올려 봤다. 놀랍게도 마케팅이 아니었다. PD 일이었다. 짧은 영상이었지만 직접 기획해 촬영하고 편집했던... PD 일 말이다. 나는 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몰입하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도 같다.
내 나이 31살.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지금껏 6년 넘게 쌓아온 기술(마케팅)이 대부분 쓰이지 않는, 그러나 피가 끓어오르는 그런 일을 지금이라도 해도 될까?' 하는 걱정. 햇살과 먹구름이 번갈아 가슴을 메우는 요즘이다.
진정한 풍요로움이란 단순히 편리함과 쾌적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좁으면 좁은 대로 풍요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니던가. - 책 『건축을 꿈꾸다』 중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던 중에, 이 문장을 만났다. 문장의 의미가 꼭 건축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다. '진정한 풍요로움이란, 편리함과 쾌적함만이 아니라는 말'을 내 상황에 비추어 보았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평생 어떤 태도로 일을 대하고 어떤 일을 오래 하고 싶은지, 나에게 진정한 풍요로움이란 무엇인지 등에 대한 근본의 물음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물음들에 하나씩 답할 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껏 오만하게 벌여온 일들과 그에 따른 많지도 적지도 않은 빚. 현실적인 벽들이 먼저 떠올랐다.
흠, 다 갚고 나면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자유로움이란,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는 상태. 즉, 자유는 진정한 풍요로움에서 오는 게 아닐까.
바라는 것과 현실이라는 뜨거움과 차가움 속에서 아직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혼란하다, 혼란해.
어차피 인생사 다 결과론이니, 나중에 성공하면 좋은 선택이요, 그렇지 못하더라도 실패보단 거름일 것이라는 희망.
'한번 태어난 인생, 가슴 뛰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은 내가 '일'을 다루는 태도이자 나만의 철학이다.
'근데 말이야, 마케팅에 더 이상 가슴 뛰지 않아. 이직을 생각하면서 더 강하게 느껴져. 마케팅을 대하는 내 마음이 차가워졌다는 걸. 거부 반응이 더욱더 강하고 자주 온다는 걸.'
마케팅을 더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슬픈 생각이 스쳤다. 내 인생에서 '일 work'가 1위였던 내가, 가슴 뛰지 않는 일을 한다는 건 나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사실 느꼈겠지만, 나는 답을 정하고 쓰고 있다. 그럼에도 걱정이 태산이라 결정을 유보하고 있는 것일 뿐.
하고 싶지만 낯선 그 일이 진짜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한 불안. 그리고 몰입하더라도 그걸로 돈을 넉넉히 벌 수 있을까 하는 걱정.
그래도.. 안 해보면 모른다. 해봐야 안다. 온몸이 뒤틀린다. 너무 해보고 싶어서, 미친 듯이 꿈틀댄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은 31세는 괴.롭.다.
근본의 물음들에 계속 실행으로 답하다 보면, 내 마음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정말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몰입하는 일을 하자'는 마음은 변치 말자.
마케팅을 더 해볼지, 새로운 역할을 찾아볼지, 창업할지 등 아직 결정을 내리진 못했다. 처음에 말했듯이 혼란 그 자체인 뇌를 그대로 받아적은 글 정도로 생각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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