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잘못됐다. '나는 지금 무얼 배우고 있나. 무엇을 위해 배우고 있나.' 이 질문에 전혀 대답하지 못한 채, 배우면 배울수록 세상이 싫어지는 눈과 마음만 갖게 되었다. 그렇지, 이건 단단히 잘못됐다.
얄팍한 배움이 나를 집어삼켰다. 스스로 나아졌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세상을 발아래 놓고 조롱하며, 세상이 나에게 똥이라도 묻힐까 봐 나만의 동굴에 숨어버렸다.
사실 알았다. 배울수록 더 큰 것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그것과 싸워 이기지 못하면 더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나와 나의 싸움이다. 본성과 이성의 싸움이다. 욕망과 이상의 싸움이다. 동물적 감각과의 싸움이다. 올바름과 그릇됨의 싸움이다. 싸움에서 이기는 것도 나, 지는 것도 나지만... 이겼으면 하는 축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을까? 작은 것에도 행복했고, 시답지 않은 농담에도 깔깔 웃어대던 나로. 똥이 묻을까 숨는 게 아니라, 똥이 데굴데굴 굴러간다는 이야기에 배꼽 잡고 웃던 나로.
배움을 통한 성취에 단단히 중독되어 내 그릇된 세상은 점점 공고해져갔다. 그러니 배우지 못할 듯한 만남은 자연스럽게 꺼려졌다. 그렇게 나는 점점 외로워졌다.
'상쾌한 기분만 느끼는 배움'은 이제 하지 않는다. 1단계는 넘었다. 근데 '외로움'이 2단계라면 너무 아픈 거 아닌가.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닐까?
'외로움'이 2단계라면 그렇게 설계된 이유가 있을 것. 난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렸음에 틀림없다. 자, 찾으러 가보자.
'한 번의 자극은 다음의 더 큰 자극을 원한다.' 나에게 배움을 통한 쾌락적 성취는 이 원리가 더 강하게 작용했다.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 되었고, 난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잃었다.
소소한 일상의 상실을 넘어, 난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것을 잃었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사랑'이었다.
더 큰 자극이 필요한 배움도 재미없어지고, 그토록 사랑했던 일도 재미없어지고, 나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TV도 재미없어지고,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 같아 강박스럽게 읽게 된 책도 이제는 재미없어졌다. 더 큰 자극을 쫓다 인생은 무미건조해졌다. 그 無재미의 삶이 나를 완전히 집어삼키기 전, 우연히 한 공간에 다다랐다.
도하서림 途霞書林. 모르겠다. 그냥 이번 주에 너무 가고 싶었다. 전부터 팔로우했던 분(진우님)이 만드신 공간이라 (나 혼자) 마음의 거리는 가까웠다.
사실 그 공간에서도 강박적으로 '공부'하려고 내 책을 3권이나 챙겨갔다. 하지만 그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저 '도하서림'이라는 진우님의 철학으로 채워진 그 공간에서 나의 단단한 세상을 깨줄 도끼 같은 책을 '우연히' 만나고 싶어졌다.
둘러보다가 평소 좋아하던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을 집어 들었다. (아, 요즘 한자만 보면 집어 드는 경향이 있는데, 아마 그렇게 이 책이 나의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人生을 바라보는 안목』이라는 책. 진우님의 밑줄과 접혀진 모서리를 따라 읽었다. 사실 디테일한 내용보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던지고, 진우님이 밑줄친 질문들'에 스스로 답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꿈에 대한 질문을 나에게 해보았다. '너의 꿈은 뭐야? 무엇을 이루고 싶어?' 적다보니, 바로 여기서 내가 놓쳐버린 '사랑'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내 꿈은 창업인가? 스타트업 대표가 되면 행복할까?' 지금까지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적힌 문장을 눈으로 직접 보니,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다. 아니었구나, 그럼 진짜 꿈은 뭐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복을 짓고 사는 것'이라 다시 적었다. 본능적으로 온전한 행복감을 느꼈다. 이거였나보다. 찾았다, 내가 바라는 진짜 꿈.
그랬다. 원하지도 않는 꿈을 내 꿈으로 착각하고, 사랑을 내팽개친 채 냅다 달렸으니... 외롭고 힘든 건 당연한 거였다. (아, 이제 창업이나 일 때문에 연애 안 한다는 X소리는 집어치워야겠다.)
꼭 연인의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을 비뚤게 보고 있으니, 속으로 계속 주변인들의 단점만 찾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난 혼신의 힘을 다해 사랑하는 이가 없다. (적고 나니 더 슬프고 어리석네, 왜 여기까지 온거니)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라, 내가 주지 않으니 '사랑들'이 나를 떠났다. 당연했다. 나 같이 꼬인 인간을 사랑해줄 이는 없었다. 마음에 사랑이 1%도 안 되는 인간, 무엇을 쫓는지도 쫓기는지도 모르고 실체 없는 성공에 눈이 멀어버린 인간을.
"Love is all. 사랑이 전부다." 사랑이라는 마음은 사랑스럽게 보는 눈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눈부터 고쳐 뜨자. 진짜 다 떠나기 전에.
관성의 축을 옮겨야 한다. 삶의 나침반을 고쳐야 한다. 그래서 모든 걸 멈추고 가만히 있어 보았다. 그러니 빈 공간, 진공 眞空이 보인다. 채울 필요 없는 공간이 보인다. 지금까지 난 이 공간을 억지로 채워왔구나.
에너지 가득한 몸. 깨끗하고 올바른 마음. 사랑으로 가득 찬 영혼. 이 삼박자가 잘 어우러진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그래... 근데 왜 난 사랑을 못하고 있던 걸까?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한 이유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였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타인을 사랑할 수 없었다. 사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는 나를 가장 증오하는 인간이었다.
작은 말실수에도 나는 며칠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가 이런 말실수를 하는 인간이라니...'라고 자책하니 내가 점점 싫어졌다. 그렇게 자기혐오를 인지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던 나에게 도하서림의 또 다른 책이 말을 걸었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진우님과의 대화로 그가 추천하는 책을 읽고 싶어지던 차였다. 이 책은 진우님께서 눈물이 뚝뚝 흐른 책이라고 하셨다. 몇 장 넘기고 알았다. 이 책도 내가 잊은 중요한 걸 상기시켜 줄 것이라는 걸. 책 일부를 발췌해본다.
- "넌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니?" 소년이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것" 두더지가 대답했어요.
- "자신에게 친절한 게 최고의 친절이야." 두더지가 말했습니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눈물이 차올랐다. 사실 흐를 뻔했다. 주책맞게 휴지 달라고 할 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내가 자기혐오가 강한 상태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고마운 책이다.
이제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하고, 나에게 가장 친절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본다.
똥 묻을까 숨어버렸던 나. 사실 그것을 똥으로 볼지, 거름으로 볼지는 나의 선택이었다. 사실 똥이어도 씻어버리면 그만인 것. 사실 그게 사랑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난 왜 더 깊게 숨어버렸던 걸까.
다시 사랑 넘치는 삶을 살아보자. 한 5년 전쯤부터였나보다. 사랑에 인색해진 게. 다시 되돌려보자. 온갖 마음속 핑계로 연락하지 않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표현해보자. 물론 말로는 부끄러우니,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책을 슬쩍 건네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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