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가만히 있는 기분, 나만 아무것도 안 하고 멈춰버린 느낌.. 고장난 시계같다는 기분으로 살아온 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 할 일이 없던 게 아니다. 오히려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아마도 6개월마다 찾아오는 번아웃이 돌아온 모양이다.
최근 들어 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뇌 뿌연 느낌? '내가 원래 이렇게 멍청했나, 내가 이렇게 말을 못 했나?'하고 자괴감 들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스트레스가 더 높아졌고 뇌는 점점 더 뿌예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제대로 탈이 났다. 생굴 먹고 노로바이러스에 걸려, 이미 약해진 면역 시스템이 더욱 바닥으로 꺼졌다. 그렇게 나에게 온갖 염증들이 찾아왔다. 비염, 위염, 장염, 모낭염까지... 그렇게 온몸의 염증에 허우적대며 2주를 날렸다. (이제는 괜찮아진 상태다)
몸이 아파서인지 나만 그대로인 기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다 동굴이 또 깊어지겠다 싶어 울적한 마음을 글로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 쓴 일기>
"왜 난 가만히 여기에 있을까.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나는 왜 정체되어 있는가? 진짜 나와 차이가 크게 나는 인간을 부러워하고, 어떤 책은 좋고 어떤 책은 나쁘다는 나만의 기준으로 이상한 판단을 해버리길 반복하는 나... 어쩌다 이렇게 꼬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무언가를 욕하고 평가질한다는 건... 내가 그것을 엄청나게 갈망하고 있구나. 내가 그것을 갖지 못해 객기를 부리고 있나 보다. 그렇지. 세상이 비뚤어진 게 아니라 내가 비뚤어진 것이지. 세상은 가만히 언제나 똑같은데 나만 왔다갔다 오르락내리락 하는구나. 아, 그럼 나 이제 뭘 해야 하지? 이렇게 좌절의 감정이 들 땐,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매번 감정의 알을 깨고 나오는 게 너무나도 힘들다. 나만의 법칙이 있으면 어떨까? 그래. 이렇게라도 뱉어보자. 이렇게 뱉어내니 조금은 진정이 된 것 같기도 하네."
그랬다. 그때의 난 누군가를 미치도록 부러워했고, 누군가를 미치도록 질투했다. 그럴수록 외로워지는 건 나 혼자였다. 누군가와 비교하니 나는 너무나도 하찮았고 어떤 이들을 한껏 올려다보며 비교할수록 나는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 나만 볼 수 있는 어딘가에 감정을 뱉어버리는 것. 그것을 알게 된 값비싼 시간이었다. 나에겐 그 어딘가가 일기장이었다. 글을 쓴 것 뿐인데 조금 살 것 같았다. 내 문제를 내 안에 두는 게 아니라, 밖으로 꺼내니보니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문제였다. 누가 볼 것 같다고 생각 말고, 감정에 매우 솔직해져 뱉어내듯 글을 쓰는 것.
문제는 뱉어야 버릴 수 있다. 내 안의 문제는 꺼내야 제대로 보고 버릴 수 있다. 뱉지 않고 계속 삼켜내면 내 안에 계속 머물고 나를 괴롭힌다. 그러니 다 뱉어버리자-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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