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ube Music에서 알아서 큐레이션한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 음악 취향은 뭐지?'라고 생각했다.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일하며 듣는 음악은 가사 없는 희망 넘치는 그런 음악을 좋아한다. 와인 마실 때는 그루브 넘치는 짙은 재즈를 좋아한다. 슬픔이 몰려오는 날엔 이별이 가득 담긴 발라드를 좋아한다. 아, 그렇게 나는 음악 취향 따위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잠시 슬퍼졌다.
아, 아니지. 취향 따위 없는 인간이라 해석하는 것부터 잘못됐다. 상황에 따라 다른 장르를 듣고 싶은 것도 나니까. 그리고 음악 장르를 잘 몰라 서술 못하는 것도 나니까. 슬퍼할 게 아니라 관점을 바꿔야 했다.
'취향'이라는 말. 전까지 좋게만 보였던 이 단어가 오늘은 참으로 싫어진다. '취향'이라는 잣대로 나를 스스로 얼마나 가두었을지 생각해보니 속이 갑자기 답답해졌다. 그래서 '취향'을 나만의 정의로 바꿔보기로 했다.
'취향'은 대게 '좋아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너 음식 취향이 뭐야?'라는 질문은 '너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라고 쓰이니까. 그렇지만, '취향'을 '싫어하는 것 빼고 모두 다'라고 정의한다면? 그리고 싫어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만 스스로 인정한다면? 내가 지금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취향이란,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을 싫어하는지로 재정의해보자. 나는 음악은 상황에 맞추어 대부분 좋아하는 편이다. 시끄러운 록이나 EDM만 빼고 말이다. 그것이 내 취향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록과 EDM을 좋아하는 사람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나와 다를 뿐.
좋아하는 것만 쫓다 보면 내 세상에 갇히게 된다. 내 세상에 단단하고 두꺼운 벽을 쌓고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그러면 결국 도태된다. 고집불통 할머니가 되어버린다. 아, 그러긴 싫다.
사실 이것은 흑백논리가 아니다. 좋아하는 걸 깊게 파보며 얻게 되는 것들도 꽤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새로운 세상에 나가서, 싫지만 않다면 아니 알레르기 반응만 없다면 경험해보는 것. 그것이 편식쟁이가 되지 않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나만 맞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른 세상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좋아하는 것도 더 깊게 좋아해보고, 낯선 것도 필터 없이 접해보는 것. 인생에 이 두 행동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이 글은 한쪽으로만 너무 치우친 취향이 좋다고 생각했던 나에 대한 반성문이다. 무엇이 맞고 틀리다의 흑백논리는 아니다.
어렵겠지만 늘 좋아하는 것들로 꽉 채웠던 내 인생을 부수어야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마케터만 있는 살롱을 기피하고,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만나는 모임을 선호하는 이유다. 그리고 마케팅만 공부했던 과거와 달리 인문학, 회계, 심리학, 자연과학, 예술 등을 접하기 시작한 이유기도 하다.
혹시 자신의 분야에 심취해있다면 혹은 그런 친구가 내 옆에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충분히 즐기다가 준비되면 밖으로 나와. 그리고 Chapter 2를 시작해보자. 너가 모르는 세상이 펼쳐질 테니까." 억지로 다른 것을 보라고 하고 싶진 않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올 테니. 그때 이 글이 읽어볼 만한 글이 되길.
자신의 벽을 누군가 깨주길 바라진 말자. 달걀을 누군가 깨면 프라이지만, 내가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된다는 말처럼. 자신이 나오고 싶은 그러한 순간에 자신의 힘으로 나오기만 하면 된다. 그날 그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매일을 맞이하자. 이 망할 놈의 취향에서 벗어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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