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린다. 적응한다는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적응'이라는 단어가 앞으로 내게도 중요한 키워드일지 말이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적응이라는 단어를 너무 안 좋게만 생각했던 것 같다.
무언가 너무 적응되어버리면, 익숙해지고 나태해진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태해지면 결국 도태되기 때문에 적응을 나쁘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거기서 반드시 적응해야 한다. 그들만의 문화에 스며들어 적응해야만 그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적응이 진리인 사례는 자연에서도 많이 관찰된다.
자연에서 말하는 '적응'은 '생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환경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추운 북극에 사는 에스키모인들의 평균 몸무게는 77kg이지만 더운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평균 몸무게가 57kg라고 한다. 그들은 환경에 적응한 것이다. 왜?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원리가 궁금하다면, 이 링크로 이동!)
아, 그랬구나. '적응'이라는 한 단어로는 좋고 나쁨을 판별할 수 없다. 주어가 중요했다. 무엇에 적응하느냐. 결국, 어떤 환경에 적응하느냐의 문제라는 것.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은 '무목적성'을 설명하며 이런 말을 했다. "인류는 생명체의 의미에 대해서 항상 궁금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생명체는 DNA의 생존을 영속시키려는 것보다 더 높은 목적이 없다. 생명체는 단지 맹목적이고 냉혹한 무관심만 있을 뿐, 설계와 목적, 선과 악이 없다." ...DNA의 생존을 영속시키려는 것보다 더 높은 목적이 없다 = 무목적성
하지만 이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신체적 목숨을 위협하는 것들은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는 신체적인 죽음보다, 정신적인 혹은 영혼적인 죽음(death of the soul)을 두려워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어쩌면 깊숙이 사적인 영역인 영혼이 죽으면, 결국 우리는 목숨을 잃은 것과 같은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 (앞으로 영혼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할 텐데, 불편하시다면 Soul 소울이라는 단어로 치환해 읽어주길 바란다. 또한 나는 종교가 없다는 점도 밝힌다.)
맞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 영혼을 살리기 위해, 지금까지 스스로 무언가를 바꾸려고 아등바등 노력해왔다. 예를 들면, 전 회사가 너무 별로라서 회사를 바꾸려고도 노력해봤다. 하지만 나의 힘으로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땐 내가 죽도록 더 열심히 하면 바뀌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결국, 환경은 변하기 힘들다.
이 사실을 깨달은 후 한동안 좌절했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며칠 전 함께 공부하는 친구의 말에서 다시 희망을 찾았다. "인간이 다른 종(species)과 다른 점은 환경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가로막는 요소들이 있지만, 그래도 인간은 다른 종에 비해 비교적 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율이 주어진다는 것에 완전히 동의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 환경에 있어야 할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나에 대한 질문에 답을 먼저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피카츄인가, 꼬부기인가, 파이리인가? 내 강점은 전기인가, 물인가, 불인가? 결국, 나의 뿌리에 다가가는 질문들로 나를 먼저 정의해보아야 할 것.
그렇게 내가 피카츄라는 것을 알았다면, 라이츄가 될 수 있는 환경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렇게 나를 진화시킬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하는 방법도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많이 얻었다.
<나를 진화시킬 환경을 선택하는 질문>
1. 내가 멋질 수 있는 환경인가?
-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늘 멋있길 바란다고 한다. 스스로 멋지지 않다고 생각할 때 영혼의 죽음을 느낀다. 그래서 난 나의 강점이 뚜렷하게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택한다. 인간은 스스로가 멋질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렇기에 '멋짐'은 나에게는 삶에 있어 정말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2. 나에게 알맞은 크기의 환경인가?
- 무조건 크다고 좋은 환경일까? 남들이 좋다고 하는 환경이 좋은 환경일까? 아니다. 나는 아직 부화도 안 한 달걀인데, 나를 부화시켜주는 환경이 아니라 파괴하는 환경이라면? 지금 나에게 맞는 단계의 환경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3. 가치관이 맞는 대화 가능한 사람이 있는가? 심지어 많다면?
- 앞의 조건들이 갖추어졌더라도,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이 없으면 완전히 말짱 꽝이다. 예를 들면, 나는 워라밸을 그렇게 추구하진 않는다. 일이 삶인 인간이다. 하지만 워라밸을 너무 지켜주는 회사에 들어간다면 나에겐 지옥 같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 같은 가치관으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은 그런 환경을 골라야 한다.
나를 돌이켜보면, 난 늘 생각보다 나에게 좋은 환경을 선택했던 것 같다. 강점은 최대한 살리면서 나를 극한으로 몰아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늘 선택해왔다. 그래서인지 매우 게으른 성향이지만, 학습이나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부지런했던 것 같다. 꽤 잘 선택한 환경 덕분에 부지런히 배웠고, 열정을 다해 일했다.
그랬다. 나는 대단한 어디로 가고 싶다거나 무언가 크게 되고 싶다거나... 대단한 목적지가 있는 게 아니었구나. 결국, 영혼의 생존 survival of the soul, 더 나아가 영혼의 성장 growth of the soul을 위해 열심히 살았구나. 오히려 멋진걸?
더불어 알게된 건, 각자가 영혼의 성장을 이루는 방법과 환경이 달랐을 뿐. 이것이 서로 가치관이 다른 이유 중 하나라는 것.
나는 내 영혼 Soul을 살리기 위해, 더 나은 환경을 끊임없이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환경에 치열하게 적응하여 생존할 것이다. 그렇게 영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그런 선택을 해나가며 살아 나갈 것이다.
하나 더 명심할 것. 충분히 그 환경을 음미하고 숙성한 후, 썩기 전에 다른 환경으로 옮겨갈 것. 다만, 나에게 맞는 환경이 아니라면 빠르게 도망갈 수 있는 판단력도 함께 기를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