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동안 나를 괴롭혔던 개념 두 가지. 이 양자택일의 문제였다. 70점짜리만 해야 한다 vs. 밀도를 끝까지 올려야 한다, 둘 중 어떤 걸 택해야 할까?
이 질문을 품게 된 계기들은 이랬다. 먼저 공부하며 배웠던 건, 70점짜리만 하자는 것. 100점, 120점까지 추구하면 완벽함의 세상이 스스로를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다. 상대가 바라지 않는 탁월함은 결국 외면당하고 잡아먹힌다는 것이었다.
다음, 밀도를 끝까지 올리는 건, 29CM 마케팅 히스토리를 디깅하며 갖게 된 생각이었다. 29CM가 했던 29Animals, 만우절 이벤트, LUCY 등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반성에 더불어 그들이 변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의미에서 변태. '아... 29CM는 진짜 완전히 미쳤었구나... 구조도 잘 짰고... 디테일 변태다...'
이 두 개의 생각이 나에겐 부딪히는 개념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나는 70점짜리를 해야 하는가, 120점짜리를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함께 공부하는 커뮤니티 리더분께 물었고, 그의 답변을 듣고 띵했다. 그리곤 이런 자괴감이 몰려왔다. '나는 아직도 멀었어... 도대체 왜 저딴 질문을 품고 있었을까... 그래도 물어보길 잘했어...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야...'
처음부터 70점을 생각하는 건, 완전히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120점을 만들어본 사람이 70점짜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다. 120점짜리를 만들어본 적 없는 사람은 70점짜리에 대한 생각조차 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120점짜리 사람이 복제를 위해 70점짜리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기획을 70점짜리로 하라는 게 아니었다.
아, 맞네. 중요한 맥락은 다 까먹고 완전히 잘못 해석하고 있었구나. 결국 시간의 배열이 필요한 두 개념을 나는 현시점에서 양자택일하려고 했었구나. 밀도를 높여본 적 없는 내가 감히 70점짜리를 만들겠다는 요상한 생각을 했었구나.
정리되었다. 70점짜리는 생각도 하지 말고, 밀도를 높이는 일에 집중하자. 자, 그래서 최근 내가 혹은 우리 팀이 했던 업무 중에 밀도 높았던 것이 있는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박터지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이 정도면 되겠지... 저 사람이 체크해주겠지... 내 돈도 아닌데...' 이런 생각들이 우리가 밀도를 높이는 걸 방해했다. 결국, 누구의 문제도 아니고 리더인 내가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생각해야 했다. '나 놓친 게 뭐지? 중요한 사실인데 내가 모르는 게 뭐지? 내 돈이라면 내가 이렇게 했을까?...' 결국, 타협의 점점(...)이 아니라, 계속 책임의 물음표를 던져야 했다. 그 타협이 내 실력과 엿 바꿔 먹었던 것이다.
나의 크고 소중한 100만 원과 회사에서 쓰는 광고비 100만 원이 같다고 생각해야 했다. 내 돈이었다면 결코 공중에 뿌려버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을텐데...
지금 생각해보니, 결국 밀도와 책임감은 비례 관계라는 걸 알게 되었다. 책임감이 높을수록, 밀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이해됐다. 대표님이 나보다 훨씬 똑똑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가 나보다 훨씬 촘촘한 이유 등. 결코 타협하지 않는 책임감이 높은 밀도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지금까지 폭발적인 성과를 낸 적이 없어요. 생각해보니 모방한 아이디어들, '이 정도면 되겠지'했던 낮은 밀도와 타협했던 마음이 문제였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차별화된 아이디어, 높은 밀도가 아니면 승인하지 않겠습니다."
팀원들에게 하는 말 같지만, 사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마케팅팀장이라는 인간이 제대로된 아이디어 판단기준이 없었다는 것. 그래서 차별화된 아이디어도, 높은 밀도의 프로젝트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휴, 다행히 팀원들도 내 말에 동의해줬던 것 같다. 늘 커리어 고민이 큰 친구들이기에 끄덕여줬던 것 같다. 이런 못난 팀장을 믿어주는 팀원들이 참 고맙다.
띵-하게 깨닫고 나니, 내 생각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었다. "모방한 아이디어는 그저 그런 밍밍한 결과만을 만든다. 그리고 밀도 낮은 기획은 성공과 실패로 평가할 수 없다. 실패처럼 보이는 그 결과는 사실 실패가 아니라, 실수다."
결심했다. 그래! 이제 완전히 미쳐보자! 큰 숲을 보는 사람이 되자. 동시에 나무의 나이테의 원리까지 디깅하는 디테일 변태가 되어보자. 타협 따위는 하지 않는 그런 인간이 되어보자. 그래서 '왜 그렇게까지 해?'라는 말을 들어보자. 그렇게, 70점짜리 인간 말고 120점짜리 인간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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