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일을 잘하기 위해선,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주었던 누구도 그림을 그리는 법을 1부터 10까지 스트레이트로 알려준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1, 7, 10 같은 작은 힌트의 조각들을 이어 그림 그리는 법을 얼추 스스로 완성해보았고 그것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런 힌트들을 어디서 가장 많이 줍줍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영상 PD로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였던 것 같다. 영상 PD를 하면서 초 단위의 기획, 정확하게는 CUT 단위의 기획을 해야 했던 것이... 내가 일하는 사람으로서 그림을 그리는 법을 알게 해준 천운같은 기회였던 것이다.
단순히 CUT만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다. 순서가 있었다. 영상 주제를 기획하고, 콘티를 짜고, 촬영을 준비하고, 촬영하고, 편집까지 하는 그 과정까지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않고서는 협업도, 편집도.. 뭐 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현장에서 피 터지게 배운 끝에 얻은 것은 딱 하나. 그림을 제대로 그리는 법이었다.
그렇게 일을 시작했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않고서는... 무엇도 시작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내가 무언가를 시작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가장 먼저 연필과 종이를 꺼내는 것이다. 내가 마음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연필과 종이였다. 떠오르는 키워드들을 마인드맵으로 그려보기도 하고, 그것들을 나누어보기도 뭉쳐보기도 한다. 그렇게 제대로 그려보는 과정을 거쳐야만, 동료든 고객이든 타인에게 소개될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 궁극적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건,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특히 리더라면 반드시 그림을 제대로 그릴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꼭 부서, 회사의 리더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는 업무에 있어 프로젝트든 채널이든... 리드의 역할이 부여된 사람이라면 그 사람도 그림을 그리는 역량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그림을 잘 그리는 법'을 7단계로 나누어보았다. 내가 말하는 그림을 그린다는 건, 디지털로 옮기기 전까지 아날로그로 그려보는 것을 의미한다. 아날로그 방식의 완전한 시작의 단계에서 끝까지 상상해야만 디지털로 옮겨 타인에게 공유할만한 자격이 생긴다는 의미다.
<그림을 잘 그리는 법 7가지>
1. Choose - 정하기
2. Spread - 펼치기
3. Layering - 층위 구분하기
4. Connect - 연결하기
5. Process - 순서 지정하기
6. Check - 누락 점검하기
7. Coloring - 채색하기
나도 평소에는 이런 과정을 똑같이 따라 하진 않았다. 그러니 기획의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빠뜨리고 있는지 점검하는 용도로 봐주길 바란다.
1. Choose - 정하기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할 때,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계기가 반드시 있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만 또는 팩트 기반 데이터로만 시작했어도... 일단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객관성과 주관성은 서로 보완해주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데이터와 나의 주관적인 생각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다음 시작해야 한다.
2. Spread - 펼치기
정해진 주제나 아이디어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키워드, 데이터, 의미, 목표, 타겟, 과정 등 생각나는 대로 모든 것을 종이에 마구 적어 보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난 <주간 30살> 뉴스레터를 쓸 때 주제를 정한 후 노트에 쓰고 싶은 말들을 마구잡이로 적어본다.
3. Layering - 층위 구분
'층위 구분'은 '그룹핑(Grouping)' 과정을 포함한다. 층위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묶이기 때문이다. 층위 구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보통의 기획에서 층위 구분이 생략되는 경우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그것의 누락이 발견되는 순간, 그 기획은 엉성해 보이기 시작한다.
층위 구분이 말이 어려울 것 같아 쉬운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2단계에서 과일, 사과, 채소, 배추 4가지 키워드를 나열했다고 보자. Grouping만 한다면 '과일&사과', '채소&배추' 이렇게 묶고 끝낼 것이다. 여기서 층위 구분을 한다는 것은 '과일', '채소'가 상위, 그 안에 '사과, '배추'는 포함되는 하위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다. 예시가 쉬워서 '에이... 이런 걸 누가 못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획 단계에서 이런 일은 생각보다 비일비재하기 일어난다.
분명히 위아래의 계층적 관계임에도... 단순히 병렬적으로, 그러니까 일자로 줄 세워놓는 이상한 경우가 아주 많다.
4. Connect - 연결
'연결'은 그렇게 구분한 요소들끼리 어떠한 속성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단계다. 유사성, 카테고라이징, 차별성 등의 속성을 정확히 파악해보는 것이다.
5. Process - 순서 지정
'순서 지정'은 연결된 요소들의 순서를 정해보는 것이다. 요소들의 선후관계를 부여하는 것. 시간의 순서로 나열하거나 우선순위 순으로 순서를 지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쉽게 말해, 무엇이 앞이고 무엇이 뒤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6. Check - 누락 점검
전체 완성하고자 하는 그림에서 누락한 것이 없는지 점검하는 단계다.
7. Coloring - 채색
마지막으로 지정된 순서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채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6단계까지는 연필로 그리기 전과 슥슥 틀을 그리는 단계로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었다면, 7단계는 색을 올리는 채색 단계로 나의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단계를 뜻한다.
그림 그리는 법을 소개하니, 간단하게 그림으로도 그려보았다. 설명이 어렵다면 아래 그림을 참고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