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을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케팅 책만 읽고, 마케팅 강의만 들었다. 그럼에도 난 마케팅을 잘하지 못했다. 리더를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리더십 책만 읽고, 리더십 강연만 찾아 다녔다. 그럼에도 난 좋은 리더가 되지 못했다. 왜였을까.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도대체 난 왜 원하는 걸 얻지 못했을까.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얼룩졌기 때문이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공부만 해서... 내 세상에 갇혀 세상과 단절하는 벽을 열심히도 쌓고 있었구나. 공부하면 할수록 오히려 나를 가두는 벽이 두껍고 높아져 나가기 힘들어졌던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코리아 넘버원>을 보면,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긴 노하우를 통해 깨닫는 게 정말 많다.
나전칠기 편에서 칠기*을 만들 때 나무장에 옻액*을 고르게 바르는 방법은 이렇다. 가로로 칠하고, 세로로 칠하는 것. 그렇게 가로와 세로를 끊임없이 번갈아 발라야 얼룩지지 않는다.
*칠기 : 옻칠을 한 칠공예품
*옻액 : 옻나무에서 얻은 수액
모시 편에서는 배틀로 씨실과 날실을 엮어 천을 짠다. 가로의 실과 세로의 실을 엮어 실이라는 선을, 천이라는 면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가 아는 정교한 모시 천이 탄생한다.
나전칠기와 모시 편에서 깨달은 것.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선, 얼룩지지도... 엉키지도 않아야한다. 얼룩지지 않고, 엉키지도 않는 방법은 하나다. 가로와 세로를 반복하는 것. 가로로 한번, 세로로 한번. 그뿐이다.
내가 좋은 리더가 되지 못했던 이유.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이었다. 마케팅을 잘하고 싶다고 마케팅만 공부하고, 좋은 리더가 되고 싶다고 리더십만 기한 없이 공부했던 것. 그렇게 난 비뚤어진 내 세상이 모든 세상이라 착각했던 거다. 그것은 내가 왜곡하여 바라본 세상임에도 말이다.
가로로 한 줄, 세로로 한 줄. 결국 지금까지 난 열심히 가로줄만 긋고 있었고 그렇게 어떠한 면도, 어떠한 작품도... 만들지 못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허술한 천을, 완전히 얼룩진 공예품을 만들었고... 난 그것들이 내 고고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의 이 모습을 보았던 수많은 동료들과 선배들은 얼마나 웃겼을까?
가로로 칠하고 그 칠이 마르기 전에, 세로로 칠해야 얼룩지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건, '마르기 전'이다. '적절한 타이밍' 말이다. 가로로 칠한 옻액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말라버린 뒤엔 아무리 세로로 칠해도 얼룩진다. 그러면 그 칠기는 작품 가치가 없어 버려야 한다.
수없이 가로 칠만 했던 나날들. 세로로 칠하는 방법은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끌리는대로 살지 않는 것.' 내 마음이 가라는대로 가지 않고, 내 발길이 이끄는대로 가지 않는 것. 알고리즘에 철저히 반항하는 삶. 알고리즘은 취향이라는 명분으로 반대편을 보지 못하게 한다. 알고리즘은 반쪽짜리 세상만 보여준다. 디지털에 익숙해질수록 알고리즘에 반항하기 힘들어지고... 생각조차 못 하는 바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또... 이런 질문들이 내 안에서 새롭게 피어났다. '얼룩진 사실조차 모르면 어떡해?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상태면 어떡해? 내 생각의 반대편이 무엇인지 감조차 안 오면 어떡해?' 이에 대한 해답은 주변의 힌트를 엮어 찾게 되었다.
나를 혼내는 인간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예전엔 나를 혼내는 인간을 정말로 미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혼내는 인간을 더 좋아한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써서 나를 혼내는 인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진짜로 나를 사랑하는 인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뭐... 어줍짢게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높이고 나를 낮추는 말을 하는 인간은 여전히 미워하긴 한다.)
검은 머리 성인인 나를 혼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를 혼내줬으면 하는 인간들도 다들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만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말속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고전, 인문학책 등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끌리지도 않는 무언가를 접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내 세상을 깨부수어 세상을 제대로 봐야 한다.
많이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많은 양의 정보는 오히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의 조언을 힌트로 삼을 필요도 없다. <코리아 넘버원> 나전칠기, 모시 편에서 옻액과 실을 채취하는 과정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잘 생각해보자. 빠르게 가로 칠, 세로 칠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옻액은 페인트가 아니란 말이다. 칠기는 싸디싼 공산품이 아니란 말이다. 가로칠 한번 할 수 있는 옻액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땀을 흘려야만 한다. 땀을 흘려 얻은 철저히 좋은 재료로, 가로 칠 한 번... 세로 칠 한 번 하는 것이다.
가로 칠 한번 하기도 어렵다는 것. 그래서 많은 힌트를 다 취하는 게 아니라, 힘겹게 얻은 하나의 힌트에 깊게 Digging 해야 비로소 가로칠 한번을 할 수 있는 좋은 재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제대로 된 재료가 아니면, 가로고 세로고 무슨 소용인가. 애초에 작품 가치가 없는 것을.
우리는 iCloud가 아니다. 우리의 뇌 용량, 시간, 에너지는 돈만 내면 무한정 늘릴 수 있는 iCloud가 아니란 말이다. 그렇기에 안목을 키워 제대로 된 힌트를 얻어 일정 시간동안 하나만... One Thing만 Digging 해야 한다. 그것을 반복하다 보면 비로소 얼룩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가끔은 '얼룩지면 좀... 어때?'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별 탈 없이 살 수는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난 얼룩진 삶을 선택할 수 없는 이유가 따로 있다. 세상의 불편을 해결하는 사업가가 되고 싶기 때문에. 사업가가 되려면... 세상을 제대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얼룩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 세상에 멋진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 그 멋진 작품은... 어떠한 물건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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