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트렌디한 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힙한 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완전 참신한데?' 이런 생각들. 그렇지 않은 모든 건, 구리다고 생각했다. 참 못났었네, 나.
콘텐츠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일을 시작할 때부터 트렌드와 떼려야 땔 수 없는 사이였다. 특히 뷰티 업계였으니 더욱더 그랬다. 패션이나 뷰티처럼 트렌드를 바짝 쫓아야만 사는 토네이도 같은 분야가 또 있을까? 그 주기는 또 얼마나 잦은가. 또 인플루언서가 얼마나 콘텐츠를 잘 만드는가. 타 CP사들(콘텐츠 제공사)과 날아다니는 인플루언서와 경쟁하려면, 내가 만드는 콘텐츠는 매우 자극적이면서도 트렌디해야 했고 최초여야 했다. 그래서 홍길동처럼 여기 번쩍, 저기 번쩍했더랬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만들었던 콘텐츠는 캠프파이어의 장작처럼 순식간에 불타 재가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엔 활활 타는 나의 창작물과 그것의 재까지 정말 멋져 보였지. 내가 기획한 영상 콘텐츠가 하루 만에 10만 회, 잘 나오면 빠르게 30만 회 그 이상도 나왔으니까. 고작 하루 이틀이었다. SNS 콘텐츠의 수명은 딱 그 정도였다. 순식간에 주목받고, 순식간에 고요해지는 그런 업무였다.
이제 나는 마케팅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예전의 나와는 다른 인간이 된 것 같다. 내 노력이, 팀원의 노력이 순식간에 활활 타올라 재가 되어버리는 업무를 경계하게 되었다. 적어도 하루 이틀 만에 활활 타오르고 마는 그런 업무는 절대 하지 않는다. 요즘은 자주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우리, 오래 가는 걸 합시다."
기획에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배웠다. 반짝하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적응할만한 충분한 시간과 그 시간이 쌓여 하나의 철학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하나의 문화가 되는 것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기획을 얼마나 한시적이고, 단편적으로 생각했는가. 그리고 얼마나 내가 하고 싶은 얘기만 전달했는가. 일방적으로 전달만 하면 당연히 듣는 줄 알았던 것 같다. 바보 같다. 얻어걸리는 사람이 있겠거니 했던 것 같다. 멍청했다.
아, 그들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완전히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을 지금까지 몰랐다. 의식하지 못하게 스며들기 위해서는 반짝하면 안 된다는 걸 몰랐다. "날 좀 보소!"라고 하면 안 됐다. 아휴, 주효정... 바보 멍청이!
작년까지 내가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던 모베러웍스. 결국 브랜드는 에너지를 계속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모베러웍스로 배웠다. High Energy로 시작했던 모베러웍스는 초반에 불태우고 나서 Energy가 급속도로 떨어졌다. 기획자들이 올려놓은 에너지는 그 사람들의 에너지가 다하면 브랜드 에너지까지 곤두박질친다는 걸 열렬히 좋아할 땐 전혀 몰랐다. 물론 활활 타는 불에서 은은한 숯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단순히 에너지의 차이만으로 그들은 점점 사람들에게 잊히기 시작했다. 팝업 때 하루에 1만 명이나 줄을 세웠던 그들이 말이다.
트렌드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트렌드는 세상의 흐름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 역할을 해준다. 하지만 그것을 목표로 두는 순간, 쫓아야 한다. 그것이 문제인 거다. 트렌드를 쫓는 건 성급함을 만들고,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돌다리인지 썩은 다리인지 확인도 안 하고 건넜던 성급했던 나라는 인간은 이제 돌다리인지 확인하고 한 번 더 두드려보고 건너려고 한다. 추진력이라는 힘은 잃지 않되, 내 감만이 아니라 확실한 검증을 통해 확신을 갖는 것.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아마 작게 공간을 운영해본 경험 덕분인 것 같다.
반짝하는 섬광은 내 눈을 잠깐 멀게 한다. 반대로 천장에 달린 형광등은 멋지진 않아도 늘 나를 밝혀주고 내가 무언가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반짝하며 현혹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시간을 두고 스며드는 것. 그래서 오래도록 살아남는 것. 그것이 지속성의 핵심이 아닐까?
나라는 인간도 반짝하고 쓸모없어지는 인간이 아니라, 세상에 오래도록 필요한 인간이 되어보겠다고 다짐해본다. 인간이 불이라면, 나는 불꽃놀이의 화려한 불꽃이 아니라, 언제든 필요한 가스레인지의 파란불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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