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함을 강요받던 어린 나날들. 착함을 강요하는 세상. 선 善을 강조한 세상에서 짓밟혀가는 약자들. 나쁘게 살자는 게 아니다. 착해지기 위해 나를 세상에 타협하고, 나를 버리는 것을 그만하자는 거다.
세상의 속성을 크게 2가지 축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가로축은 선 善과 악 惡, 세로축은 강 强과 약 弱. 선악 강약 중 어떤 것을 먼저 취하고, 어떤 것을 나중에 취하며, 어떤 것은 쳐다보지도 않을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약하고 선한 자는 상대에게 맞추려다 보니 자신을 잃고 그 상대가 누군지, 그 상황이 어떤지에 따라 카멜레온이 된다. 엄마 앞에선 엄마가 원하는 착한 아이, 친구 앞에선 친구가 원하는 착한 친구, 동료 앞에선 동료가 원하는 착한 동료... 처음은 상대에게 맞추는 것 정도로 스스로 생각했겠지만, 점점 그 안에서 자신을 잃어간다. 그렇게 살다 보면 되돌리기 힘든 지경까지 이른다.
약하고 악한 자는 매사에 불만이 많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쟤도 싫고, 얘도 싫고, 회사도 싫고... 그리고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한다. 이런 사람은 주로 약하고 선한 자 옆에 있으며, 그들 사이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뽐낸다. 그리곤 약하고 선한 자들을 서서히 까맣게 물들인다. 근묵자흑 近墨者黑. 선한 자는 자신이 물드는 것조차 그나마 있던 선이라는 장점을 잃는지도 모른 채 자신이 강해졌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강하고 악한 자는 약한 자들을 꼭대기에서 그들을 부리며 산다. 이 부류는 글에 담을 가치조차 없다. 옛날로 말하면 탐관오리, 지금으로 말하면 부패한 정치인 같은 자들이 아닐까 싶다. 강하고 악한 자 또한, 자신보다 더 악하고 강한 자 앞에서 카멜레온으로 변하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한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다.
강하고 선한 자는 단호함을 갖고 있다. 그리고 누굴 만나든 자신의 본 모습을 않는다. 유일하게 이들만이 카멜레온이 아니다. 이들은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지만, 자신의 원칙이 있다. 거절도 다정하면서도 단호하게 한다.
선악에 상관없이, 강자는 자신만의 뜻과 원칙이 있다. 원칙에 어긋나면 뱉고, 아니면 삼킨다. 약하다는 건, 원칙이 없다는 거다. 강자는 뿌리가 단단해 온갖 풍파를 겪어도 단단히 자라는 튼튼한 고목과 같다. 계속 누군가에 의해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 다른 이의 마음대로 아무 땅에나 다시 뿌리박히는 그런 이름 모를 풀은 약자다.
선과 악에선 선을 선택해야 한다. 강과 약에선 강을 선택해야 한다. 그럼 선과 강에선 어떤 것을 더 먼저 선택해야 하는가?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4화에 이방원의 대사를 보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선한 아버지 이성계가 악한 이인겸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본 이방원은 이렇게 말한다. "힘을 가질 때까지 결코 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힘이 없는 착함은 이미 보았습니다."
그렇다. 강해지기를 먼저 선택해야 한다. 강해지기를 선택한다고 해서, 악을 행하라는 것이 아니다. 나만의 원칙을 공고히 세우고, 자신의 본 모습을 지키는 선택과 결정을 하는 거다.
다만, 인문학의 시작은 인간의 선과 악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 했다. 예를 들면, 벌레를 잡아먹는 개구리, 개구리를 잡아먹는 뱀. 벌레는 선하고, 뱀은 악한 것인가? 아니다. 선악은 상대의 평가일 뿐, 같은 사람도 누군가에겐 선한 사람, 누군가에겐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선하다고 평가받는 자도 극한의 상황에서는 악해질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악해지라는 게 아니다. 사람을 바라볼 때,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전에 배운 '중용 中庸'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가운데 중에 떳떳할 용. '치우침이나 과부족이 없이 떳떳하며 알맞은 상태나 정도'라는 의미다. 나는 중용을 정확히 배웠다. 치우침 없이 중간을 지키려고 노력하라는 뜻이 아님을! 중용은 Balance라 했다. 선을 써야 할 때 선을 쓰고, 악을 써야 할 때 악을 쓰는 것, 그것이 중용이다. 그렇다. 계속 선하면 잡아먹히고, 계속 악하면 외톨이가 된다. '때'에 따라 선과 악을 써야 하는 것. 그것이 중용이라 배웠다.
강해지는 과정에서 자칫하면 악의 길로 빠질 수 있음 또한 알고 있다. 강해지는 방법 중 악을 취하면 쉽게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으려면 '밝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삶에 어두움이 드리우면 악이 내 현관문을 두드릴 것이기 때문에. 나도 밝아야 하고, 밝은 자들을 주변에 두어야 한다.
나는 결코 카멜레온이 되지 않을 것이다. 강하고 밝고 선해질 것이다. 아직은 멀었다. 아직도 나의 원칙을 세우지 못했고, 뜻을 세우지 못했고, 누군가에게 나를 버리면서까지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갖고 있고, 가끔은 의욕 따위를 버리고 타협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단번에 확 바뀔 수는 없겠지만, 내 속도에 맞게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본 글은 '뉴러너클럽'에서 학습한 내용을 개인적인 의견으로 해석해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