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가볍게 생각했다. 책을 다 읽었을 때, 나에겐 그저 '뿌듯한 기분'만이 남았다. 가르침의 본질은 다 사라지고, 쓸데없는 기분만이 남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훗, 나 정말 멋진걸? 남들이 쉬고 있을 시간에 이렇게 책도 읽고 공부도 하니 말이야!' 그렇게 책을 읽고, 공부했던 그 시간을 돌이켜보니 엄청난 낭비였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이라도 잘걸. 돈이라도 쓰지 않고 모을걸. 약 5개월 전쯤, 난 이렇게 후회했다.
한 달에 몇 권을 읽어내는지가 내 지식의 척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양이 아니라, 질을 쫓아야 했다. 단 한권을 읽더라도 나에게 울림 있고 나의 행동을 즉시 바꾸는 그런 가르침을 쫓아야 했다. 그렇다. 이제 양적 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질적 성장의 길로 가야한다. '넓게, 많이'보다 '깊이'에 더 집중해야 한다.
역사에서 나 같은 사람이 책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함께 깨닫게 되었다. 책은 사람의 사상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과거엔 권력을 쥔 자만이 접할 수 있는 그런 위험한 물건이었다. 그러한 책이라는 것을 내가 가볍게 여기니, 그 안의 내용이 가볍게 다가올 수밖에. 중 重 하게 받아들일수록,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다는 걸 이제 알게 되었다.
같은 책도 누가 보는지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누군가에겐 엄청난 깨달음을 준 책이 누군가에겐 분노를 일으키기도 하며 누군가에겐 시간 낭비가 되기도 한다. 또한, 같은 책도 그 사람이 읽는 시기에 따라, 그 사람 생각의 깊이에 따라 달리 읽히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인문, 고전, 자연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유다. 가벼운, 경 輕 한 것으로 본질로 다가갈 수 없다. 적어도 내 생각의 깊이가 더해질 때마다 나의 해석이 더 깊어질 수도 있는 그런 본질을 꿰뚫는 책을 읽었어야 했다. 적어도 10년, 20년을 계속 들춰보고, 볼 때마다 나에게 다른 가르침을 주는 그런 책 말이다.
사사로운 가벼운 이야기를 많이 접하다 보면 본질은 사라지고 현상과 감정만이 남는다.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트렌드와 감정만 읽고 싶지 않다. 본질에 다가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본질을 읽다 보면 원칙이 보일 것이며, 그 끝으로 가면 결국엔 자연과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인문, 고전, 자연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유다.
그다음,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본질로 다가가는 첫걸음. 질 높은 교육. 그런 교육이 어디 있을지를 생각해보았다. 대학이 떠올랐다. 대학원은 갈 생각은 없지만, 질 높은 교육을 들을 수 있는 대학 강의를 듣고 싶어졌다.
나의 대학 시절을 떠올려봤다. 나는 대학 강의도 가볍게 생각했었다. 나의 공부를 아주 가볍게 선택했다. 목적은 단 하나였다.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 그렇게 나의 최종 학점은 4.0이었다. 졸업할 땐 이 성적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내가 마치 우등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부끄럽다. 나는 어찌 쉬운 과목만 택해, 내 소중한 등록금을 날리고 생각의 깊이를 더하지 못하고 졸업했는가?
후회하니 늦은 것이겠지. 하지만 지금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다면, 자연계열, 인문계열의 과목들을 성적에 상관없이 들을 것이다. 학점이야 잘 나오든지 말든지, 내 인생에 필요한 공부를 할 것이다. 그 공부가 끝나기 전까진 아마 졸업하지 않을 것 같다. 아, 30살에 왜 이걸 깨달았을까? 대학을 졸업한 지 한참이 된 지금 깨달아 참 아쉽다.
이런 후회를 안고 구글링하다 한 사이트를 만났다. 대학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사이트. 모든 대학교의 모든 강의가 있진 않으나, 자신의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고자 하는 교수들이 동참하여 자신의 강의를 공개했다. 그 강의들이 모인 사이트다. 나뿐 아니라 지금 이 뉴스레터를 보고 있는 분들도 필요할 때 꺼내 볼 수 있도록 사이트를 공유한다. http://www.kocw.net/home/index.do
난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똑똑해질 것이다. 누군가 설정한 알고리즘에 나의 생각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똑똑함은 머리가 비상한 것이 아니라, 본질로 얼마나 다가갔는지다. 사마천, 『사기 열전』, 「백이 열전」 中 이런 구절이 나온다. "탐욕스러운 자는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열사는 이름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며,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권세 때문에 죽고, 서민은 그날그날의 삶에 매달린다.”
내가 말하는 똑똑함의 반대말은, 바쁨이다. 사사로운 것에 쓸데없이 바쁘면 그날그날의 삶에 매달리게 된다. 내가 바빠야 할 건 오직 하나. 생각하고 또 생각할 것. 그 생각은 복잡하지 말 것. 단순하고 명쾌할 것.
예전의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틀린 것이었다. 결국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누구인가? 글솜씨가 좋은 자인가? 아니다. 글은 생각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생각의 깊이가 있는 자가 단지 자기 생각을 글로 적어낸 것. 그런 글을 보고 우리는 글을 잘 썼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어린 내가 봤을 때 화려한 미사여구를 더한 글솜씨라 착각했더랬다.
사사로운 것에 바쁘지 아니한다. 그날그날의 삶에 매달리지 않으며,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생각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본질로 다가가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머리가 깨지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렇게 다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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