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공간 다큐멘터리 <건축탐구 집>은 제주에 집 짓고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들의 집에는 '필요'한 것 빼고, 아무것도 없었다. 방문한 건축가가 말했다. 필요한 것만 두니 여백이 많아져 사람이 보인다고. 흘러가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흘려보낼 수 없었다. 무언가 한 대 맞은 것처럼 얼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자취방 인테리어를 둘러보았다. 복잡했다. 물건이 많다. 심지어 같은 쓰임의 물건도 여러 개가 있다. 지난번 우리 집에 방문한 친구는 말했다. "그릇이 4인 가족이 써도 남겠는데?" 맞다. 나는 맥시멀 리스트다. 생각해보면 취향껏 꾸며낸 집안에서 나를 잃어갔던 건 아닐까? 취향이라는 말로 소유를 정당화한 나날들이 떠올랐다.
나는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이다. 이건 내 생각일 뿐 아니라, 부끄럽게도 내 지인들이 나에게 늘 하는 말이다. 각자의 벌이는 다르지만, 나의 벌이 안에서 상당한 비율로 소비한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고백하자면 난 물건을 둘러보고 결제는 즐기나, 막상 택배가 오면 바로 까지 않는 이상한 인간이다. 택배가 오는 것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엄청나게 기다렸던 물건이 아니어서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늘 공허함을 소비로 채워갔던 것 같다. 돈을 펑펑 쓰는 사람은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삶이 공허하다는 누군가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내 삶에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그 의미는 무엇인지도 생각해본다. 이런 생각을 요즘 더 자주 하는 건 물론 이런 사업을 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그에 앞서 난 정말 내 삶에 주인공이 되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주인공이 되는 삶. 주인공이 된다는 건, 무대에서 화려한 장신구로 나를 꾸미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 그로써 충분한 것. 이게 자기 삶을 더 주체적으로 산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비워낼수록 사람이 보인다. 복잡한 걸 거둘수록 사람이 보인다. 내 삶에 복잡한 것을 거둬내어 비워낼수록 지금의 내가 보인다. 마음이 아픈 나를 보았을 땐 누구보다 먼저 안아주어야 하고, 용기가 필요한 나를 보았을 땐 누구보다 진심으로 응원해주어야 하고, 행복한 나를 보았을 땐 누구보다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렸을 적엔 온갖 풍파를 겪고 일어나 인생 그래프가 요동치며 우상향하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경험을 한 인생은 그만큼 많은 배움이 있을 거라는 논리였다.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인생 그래프가 상향하는 것에 있어 큰 폭으로 떨어지거나 큰 폭으로 오르는 것을 경계하려 한다. 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된 것. 급작스러운 변화는 늘 문제를 일으킨다. 단단한 뿌리를 가져야만, 건강한 나무가 될 수 있다. 나는 이걸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주인공이 되는 삶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면, 주인공이 되려면 비워내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인간관계도 말이다.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인연을 거둬내고 나면 나를 소중히 하는 인연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 같다. 나를 나로서 응원하는 게 아니라, 나를 바꾸려 강요하는 사람. 자신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는 사람. 이러한 인연들은 사실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움의 반대말을 난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비움의 반대말은 소유가 아니라, 집착이다.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대부분 집착에서 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연인 관계, 가족 관계, 물건을 구매하는 것까지. 결국 소유하려 할수록 나뿐 아니라 모두가 힘들어진다. 집착하지 않는 건,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비우는 것. 비움으로써 자연스럽게 모두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되는 거라 전하고 싶다.
앞으로는 나도 삶에 어떤 것에 내가 집착하는지 살펴보고 그것을 차근차근 놓아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버리는 게 아니라 비우는 것. 쓰레기로 치부할 게 아니라, 원래 있어야 할 곳에 돌려보내 주는 것. 비움을 조금씩 실천해나간다면, 내 삶에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에 가까워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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