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우리는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인연,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린 인연을 만나곤 했다. 그 인연들은 나에게 아픔을 주기도, 슬픔을 주기도, 분노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난 이런 경험이 참 많았다. 최근에 다시 돌아보니, 내가 사람을 보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난 사람을 볼 때,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았다. 저 사람이 잠재력이 뛰어나면, 내 사람으로 취했다.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하면, 이상하리만큼 호감이 갔다. 그것이 문제였다. 사람을 볼 때 잠재력과 가능성만 보았던 지난 과거의 산물은 만나지 말아야 할 인연을 너무 많이 만났던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내가 타인의 '가능성'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내가 타인의 '잠재력'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난 단순하게 똑똑한 사람 같으면 잠재력 있고, 가능성 있는 사람이라 판단했던 것 같다. 아, 그것이 문제였다.
뉴러너클럽 리더 소정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을 잠재력으로 보지 말고, 시간과 에너지로 보라고 말이다. 즉, '사람=시간*에너지'로 보라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 나 진짜 사람을 잘 못 보는 인간이었구나. 그래서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 주변에 그렇게 꾸준히 많이 있었구나.
대표님과의 대화에서도 같은 포인트를 엿볼 수 있었다. 회식 후 2차 장소로 이동하던 택시 안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효정님, <위대한 탄생> 보셨어요? 거기에 자우림 김윤아님이 멘토로 나와요. 거기 오디션 참가자분들은 김윤아님의 조언을 곧이곧대로 듣고 따라 하거든요. 사실 그게 잘못되었다고 봐요. 김윤아 그분은 직접 밑바닥부터 치열하게 배운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깨달은 묵직한 진리를 말 한마디, 조언 한마디로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을까요? 그 조언으로 자우림 같은 그루가 될 수 있을까요? '자우림 같은'이라는 그것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따라 하는 거죠. 김윤아란 사람의 말을 그대로 듣고 따라 하는 게 아니라, 김윤아 그 사람의 지나온 시간과 노력을 봐야 해요. 그 사람의 지나온 히스토리를 이해하고, 조언을 들어야죠. 그래야 그 말에 담긴 진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요. 그리고 결국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고, 김윤아님에게는 맞고 나에겐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조언을 정답처럼 들으면 안 돼요."
내가 좋은 선배로 생각하는 두 분이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비슷한 말을 나에게 해주었다는 것에 더 놀라웠다. 최근 사람을 본다는 것에 고민이 많던 나였다. 그것으로 파생된 나의 행동을 자책하는 매일 밤을 보내고 있었다. 하, 내가 했던 행동들이 잘못되었다는 걸 밤마다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고치는 방법 또한 알지 못해 마음만 타들어 가는 그런 밤을 몇 달째 보내고 있다.
사람을 잠재력으로 보는 게 아니라, '시간*에너지'로 보라는 말. 결국, 고민의 시간들, 시도하는 횟수들, 그것들로 쌓인 나이테를 보라는 것이었다. 아, 인간도 자연의 일부였지. '경험의 나이테가 주름으로 나타난다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주름이 많을까?'라는 상상을 잠시 해봤다. 소정님도, 대표님도, 자신만의 나이테 모양으로 주름잡으며 성장해나가고 있는 거였다.
갑자기 뜬금없지만, 우리가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가능성 자체를 스스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나도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다. 나도 대표가 될 수 있다. 나도 사업할 수 있다. 흠,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멋진 대표들을 보며 나와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은 없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난 내 가능성에 한계를 두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피카츄에서 라이츄가 되었다고나 할까?
사람은 '시간*에너지'라고 했다. 그것을 나에게 적용해보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더욱 선명해진다. 소정님도 숙제로 내주셨던 그 과제. '내가 쓸데없이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쓰고 있는지 점검하라'는 것. 요즘의 나는 쓸데없이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낭비하는 것 같진 않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지만!)
사람을 아주 다양하게 만나려고 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꼭 필요한 사람만 만난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란 뜻은 '나의 시간을 기꺼이 써서, 나의 에너지를 높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바꿀 수 있는 사람 말이다. '필요한 사람'이라는 말이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관계는 결국은 '필요연'이라는 걸 누군가 알려줬고, 그렇게 나는 관계에 있어 심플해졌다.
내가 요즘 만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다. 말만 하는 사람. 나를 위해 걱정 섞인 의심을 하는 사람. 자신이 해보지도 않은 것에 대해 감히 조언하는 사람. 그 사람과 내가 어떤 관계일지라도, 최근에는 이런 사람들은 최대한 멀리하는 편이다. 나의 마음을 클린하게 만들기 위해. 그 클린해진 마음으로,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나의 성장에 쓰고 싶기 때문에. 나의 성장에 더욱 속도를 내고 싶기 때문에.
그리고 정말 어렵지만 계속 시도하고 있는 것이 또 있다.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아직도 정말 하지 못해 여전히 나를 괴롭게 하는 이것. 사실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자체에 집착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보지만, 뭔가 넘고 싶은 큰 산이랄까? 힘겹게 올라가서 짜릿한 정상을 맛보고 싶은 그런 거라 더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一喜一悲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은 진짜 원인을 찾아보고, 그것이 나의 성공과 아무 관련이 없는지 살펴보려고 노력한다. 아무 관련 없다면 그 감정은 흘려보내려 노력한다. 생각해보니 나는 늘 좋은 감정은 최대한 붙잡아두고 싶고, 나쁜 감정은 빨리 털어버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감정은 같은 속성을 가졌기에, 좋은 감정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낼 줄 알아야, 비로소 나쁜 감정도 잘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을 잘 본다는 건 아직도 어렵다. 사람을 내가 어떠한 잣대로 평가하고 싶진 않지만, 면접 같이 어쩔 수 없이 그런 자리는 늘 생긴다. 평가가 아니라 판단. 내 바운더리에 넣을 것인가, 넣지 않을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 그 판단 기준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나와 같은지 다른지이다. 나의 에너지를 더해줄지, 빼앗아 갈지다.
사람을 잠재력으로 보지 않고, '시간과 에너지'의 곱으로 보는 것. 그것은 나를 감싸는 주변인들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 바꿔버릴 수도 있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한동안은 내가 사람을 보기 전에, 내가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바른 곳에 쓰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그렇게 살다 보면, 저절로 좋은 인연들이 나에게 찾아오고 나쁜 인연들은 나를 떠날 것임을 믿기 때문에 사실 나만 다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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