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같은 날, 평소와 같은 사람들, 평소와 같은 공간. 그런데 나의 마음은 왜 이렇게 자주 요동치는 것일까? 요즘은 그런 날을 마주하면, 내 마음 상태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편이다. '아, 힘들다.'가 아니라 '아, 왜 힘들지?'로 생각해보는 것.
세상만사 가장 편안한 상태를 '균형'이라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리더들은 요즘 나에게 '균형'을 자주 많이 말한다. 일에 있어, 감정에 있어, 궁극적으로 삶에 있어 균형이란 무엇일까?
균형 均衡, 생각해보니 그것은 명백한 자연이었다. 균형, 그것은 사실 가장 무서운 자연의 섭리였다. 마치 생태계의 먹이사슬 같다.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고, 개구리는 메뚜기를 잡아먹고, 메뚜기는 풀을 먹는다. 그것은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자연의 섭리다.
마음에 있어 균형은, 감정의 높낮이가 크지 않아야 한다. 너무 마음을 쓰지도 말아야 하며, 내팽개치지도 말아야 한다. 사람마다 우연히 높낮이의 평균은 같을 수 있으나, 초대형 바이킹 같은 폭을 가진 자와 작은 시소 같은 폭을 가진 자의 삶은, 하늘과 땅처럼 서로 전혀 다르게 살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절대 선 善, 절대 악 惡은 없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보자는 다짐.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었다고 뱀이 나쁜 것이 아니다. 매일 착하다고 불리는 이는, 마음에 병이 생겨 고개 돌려 우는 빈도가 높다.
결국, 상황과 때에 따라 나는 선으로, 악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아니, 선과 악을 때에 맞춰 써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선해야 할 때 선하고, 악해야 할 때 악한 것. 그렇게 살면 된다.
그리고 사람마다 균형의 중심점 위치는 다르다. 중심에서의 폭 또한 다르다. 그래서 타인에게 더욱더 내 기준에 맞는 관여보다, 그 사람 스스로 자신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응원과 격려만을 해야겠다는 다짐. 물론 이것은 오지랖 넓은 나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다. 함부로 타인의 삶에 뛰어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요즘 더 자주 깨닫고 있다.
균형의 중심점에서 폭을 줄이는 것은 명상과 글을 쓰는 것을 통해 가능할 것 같다. 몸과 마음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 즉 비우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매일을 수련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부서지지 않게, 너무 애쓰지는 않고.
흠, 수련을 통해 중심에서의 폭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균형의 중심점을 옮기는 일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긍정의 방향으로 점을 계속 옮기는 것. 그것은 경험을 통해 만들 수 있다.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당신이 딱 생각하는 만큼 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인지와 무지의 균형에 있어, 자주 깨달음을 경험하여 인지의 오른쪽으로 계속 끌고 오면 균형의 추는 점점 오른쪽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믿음.
맞다. 반대로 맞닿아있는 균형의 중앙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힘을 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줄다리기할 때, 나는 어느 방향으로 줄을 당길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생각. 마음이 힘든 상태에서 더 힘든 방향으로 가는 선택을 할 것인가, 조금은 괜찮아질 수 있는 선택을 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인생은 그뿐인 것 같다. 무엇이든 균형이 파괴된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물건의 파괴, 마음의 파괴, 신체 건강의 파괴, 환경 파괴까지. 균형의 삶을 위해, 타인이 내 균형을 파괴하지 않도록, 때에 따라 선과 악을 잘 써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스스로 자신의 균형을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
당신의 삶에 균형이 심하게 요동치는 날, 이 글을 다시 꺼내 읽어보길 바란다. 나와 같이 매일의 마음이 요동치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는 진심으로 응원을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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