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착한 아이야." "넌 정말 예쁘구나." "넌 성실하잖아." "난 P라서 계획 못 짜." "난 흙수저야."
"난 직장인이잖아."
"안녕하세요, OOO 마케팅팀 OOO입니다."
...
세상에는 존재를 정의하는 말이 무척 많다. 위에 써놓은 예시를 보면,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드는가? 나는 무언가에 갇혀버리는 답답한 마음이 먼저 들어 숨이 턱 막힌다.
대부분의 사람은 무언가 구분되는 것에 자신을 빗대어 정의할 때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소속감과도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정의하는 건 인간만이 하는 행위 같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과 식물들은 흘러가는 대로 살 뿐 자신을 정의하거나 남을 정의하지 않는다.
이렇게 정의하기 위해 자신의 한계를 정해버리는 것, 자신을 어떤 프레임에 대입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스스로 가두어버리는 것과 같다. 그렇게 갇힌 생물체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직장인과 사업가의 차이가 뭘까요?"라고 소정님*께 물었다. "그것은 자신이 직장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지요."라고 답하셨다. 머리가 띵했다. 그날은 머리가 계속 띵했지만, 단순히 '나는 날 직장인이라 생각하고 일하지 말아야지!' 정도로 인사이트를 뽑고 마쳤다. *소정님은 제가 공부하고 있는 뉴러너클럽의 리더분이십니다.
"부자의 10만 원과 나의 10만 원이 같다는 걸 알게 되면 여러분은 다른 삶을 살게 되실 거예요." 소정님께서 숙제를 주셨다. '나는 재화의 가치가 같기 때문에, 부자와 나는 같은 사람이다.' 정도로 숙제를 성급히 마쳤다. 소정님께서 더해주신 힌트를 듣고, 진짜 의미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열등감'이라는 힌트를 듣고, 다시 숙제를 했다. 그것이 이번 뉴스레터의 핵심 주제가 되었고,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법도 덩달아 배웠다.
<프레임에 자신을 가두지 마세요>
프레임에 갇힌 자들은 결국 자기 비하, 열등감에 휩싸이거나, 우월감,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에 휩싸인다는 것. 프레임에 자신을 가두는 순간, 누군가와 비교과 일어나고 자신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결국 세상을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된다는 것.
특히, 더 안 좋다고 확신하는 레이어 구분의 기준이 있다. MBTI 같은 서로 다른 점을 알 수 있는 구분보다 세상을 최고부터 최악으로 레벨로 나누는 그런 구분. 예를 들어, 부자/가난의 정도를 나타내는 수저(다이아몬드 수저,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같은 것 말이다.
소정님께서 내주신 숙제를 처음 할 때, 난 부자와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했고, 부자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신적인 존재라고 그들을 신격화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이 신은 될 수 없기 때문에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날은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부자와 가난을 사람의 차이로 보는 게 아니라, 돈을 돈으로 본다면 더 버는 방법을 연구하면 된다. 그것뿐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다. 돈을 버는 방법이나 돈을 가진 정도가 다른 것일 뿐이다. 배우면 된다. 부자와 자신을 비교하며 생긴 자기 비하, 열등감을 내려놓으니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도 돈을 어떻게 더 벌 수 있을까? 하는 생산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 그것이었다. 누군가와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자신과 비교하라는 것. 열등감 혹은 우월감에 휩싸이지 말라는 것. 그것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말과 행동이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대를 프레임에 갇히게 만드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라면, 아빠라면, 팀장이라면, 대표라면, 친구라면, 동료라면. 결국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거다.
나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지금도 내 뉴스레터를 보고 있을 팀원들에게 정말 많이도 했다. 이점은 내가 정말 반성해야 한다. "넌 성실해." "넌 착해." "넌 이런 걸 잘해."와 같은 말들로 그 친구들을 프레임에 가두었겠구나.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나를 프레임을 가두는 말을 하는 자들 또한 내 곁에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를 프레임에 가두어 내가 무언가 하려고 할 때 의심부터 하는 자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며 기꺼이 응원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내가 숨 쉴 수 있다는 것을 한살 한살 먹으며 더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상대를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칭찬과 피드백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일단은 이 정도가 아닐까 상상해본다. "넌 성실해." 대신 "너의 그 행동은 나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것 같아. 고마워."로. "넌 착한 사람이잖아." 대신 "너의 이런 행동 덕분에 내가 조금 더 편안해. 정말 고마워."로.
남에 대한 칭찬, 피드백을 직접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과 행동에 대해 나의 기분과 느낌을 전하는 것. 주어를 상대가 아니라 '나'로 두는 것. 그것이 나와 상대방을 프레임에 가두지 않는 시작이 아닐까 싶다.
우리, 한 번 돌아보자. 내가 한 말들이 상대를 프레임에 가두지 않았는지를. 누군가를 아쿠아리움에 갇힌 돌고래로 만들어 제대로 살지 못하게 만들었을지를. 비록 칭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로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하기에 걸림을 만들지 않았을지 말이다. 나도 그랬던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종종 나도 모르게 그러겠지만 그런 행동을 했을 때 반성하는 사람이 되어보겠다는 다짐을 한다.
더 중요한 건, 결국 자신을 프레임 안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어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자. 나의 가능성을 스스로 무한히 열어두는 그런 사람이 되어보자.
자신을 좁은 철창에 스스로 자물쇠를 채워 가두지 말자. 지금 철창에 갇힌 기분이 든다면, 그 철창에서 나오는 자물쇠의 열쇠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자! 이제 자기 손에 꼭 쥐어진 그 열쇠로 철창에서 나와, 흘러가는 세상을 다시 마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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