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으로 좋아하는 배달의민족 한 마케터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요즘은 무너짐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아, 무너져야 하는구나. 무너지는 기회가 필요하구나. 나는 그것이 결혼이고, 아이였구나. 기고만장했던 20-30대 내 인생이 무너지니 갇혀있던 우울이 보였다." - 일부 발췌
무너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무너져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무너지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건 무엇일까?
무너진다는 건, 진짜 나를 만나는 게 아닐까. 내가 꽁꽁 싸매놓은 포장들이 나에 의해, 혹은 외부에 의해 벗겨지면 비로소 드러나는 알맹이 같은 그런 거 말이야. 진짜 나를 마주하는 순간, 그것이 무서워 무너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모티베이션 앱에서 이런 문구를 나에게 선물했다. '먼저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잊지 마세요.'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모양틀에 나를 맞춰 끼웠다. 그리고 나를 사랑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사랑한 것은 모양틀이었지, 내가 아니었다.
외모만 보아도, 화장한 모습만, 말랐던 과거의 나만 사랑하는 게 아닌, 화장과 살찜의 여부와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는 일 같은 거 말이다. 그것이 나에겐 아직도 어렵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다.
진짜 나를 사랑하려면, 진짜 나를 마주하는 것이 먼저겠지. 그 방법을 찬찬히 고민해보아야겠다. 내면을 다스리는 명상일까? 명상이 나를 마주하게 할까? 아님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계속 들여다보는 것일까?
답은 아직도 모르겠고, 수학 문제처럼 명쾌한 답도 없겠지만 하나의 방법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글을 쓰는 것. 누가 본다고 생각 말고, 잘 쓰려고 하지 말고 뱉어내듯이 글을 쓰는 것. 그러다 보면 진짜 나를 알게 되지 않을까? 글을 쓰는 그 순간만큼은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다음은, '진짜 나를 마주했을 때도, 그런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겠지. 그것이 무서워 포장하며 살았던 것 같다. 아마 나를 사랑하는 것이 타인, 물건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 같다.
아, 지금까지 나는 포장된 나를 알리기에 급급했구나. 나를 알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를 돌보는 일이었다. 타인이 아닌 내가 나를 돌보는 일. 진짜 약하고 어린 나를 마주했을 때, 다른 내가 토닥토닥하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내면의 힘.
나는 나를 진심으로 귀여워할 수 있을까? 나는 나를 미치도록 사랑하여 헌신할 수 있을까?
많은 물음을 나에게 던지고, 그 물음에 답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려한다. 아니, 물음에 답하는 것보다 내가 쏟아내는 것들을 글로 담아내보고자 한다. 매일 짧든 길든 글을 써보려한다. 한 인스타그램 계정에 비공개를 걸어, 예전에 친구와 썼던 자물쇠 달린 비밀 일기장처럼. 이미 시작했다, 나와 나의 비밀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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