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나와 인연을 이어간 소중한 공간. 그 공간과생각보다 빨리 작별하게 되었다. 내 지인들도 몇 번은 와보았던, 그들에게도 추억 가득한 공간. 내가 공간에 붙여준 이름, '본트(Bont)'다. (TMI. 지금 난 본트에서 이 뉴스레터를 쓰고 있어, '그 공간'이란 말보다 '이 공간'이라는 말을 많이 쓰게 될 것 같다)
몇 주 전 우여곡절 끝에 대출에 성공한 이야기를 뉴스레터에 담아 전했었다. 지금도 자금이 충분하진 않은 상황이었고, 어쩔 수 없이 건물주에게 연락해 임대 계약을 빠르게 종료할 수 있는지 물어봤었다. 안 될 것 같다는 회신을 받았지만, 그래도 부동산과 한 번 이야기 나눠보겠다고 하셨었다.
최근 며칠 동안 부동산에서 연락이 자주 왔다. 공간을 보러오겠다는 거였다. 나는 이것이 건물주의 보여주기식인지, 진짜로 공간을 빼고자 하는 것인지 아리송했다. 마침내 7월 1일에 공간 계약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나는 7월 31일까지 이 공간을 써야 한다고 전달받았다.
처음은 정말 기뻤다. '나의 자금 상황을 건물주도 알고, 하늘도 아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몰려오는 기간의 압박감이 존재했다. 나는 엄청난 맥시멀리스트이기 때문에 지금 이 본트에 어마어마한 물건들을 어떻게 한 달 안에 처분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내가 어떠한 공간으로 옮기는 것이 아닌 원래 있던 제2의 공간을 없애는 결정이었기에 모든 물건과 가구, 기기들을 처분해야 한다.
평소 2주에 한 번꼴로 방문하던 본트에 급하게 달려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에 일단 리스트를 작성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전문가의 손길을 빌려야겠다. 친구들에게는 좋은 마음으로 나의 물건들을 무료로 나눠줄 생각이다. 나의 상황을 고려해준 고마운 건물주에게도 그가 원한다면 큼지막한 기기, 가구는 놓고 갈 생각도 있다. (원하지 않으면 돈 내고 버려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본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본트는 2021년 5월부터 1년 넘게 나와 함께 했다. 올해 1월부터 자취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에게는 좋은 재택근무지이자, 내 생각을 키우기 딱 좋은 영감 넘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자취를 시작하고부터 이 공간은 나에게 의미를 점점 잃게 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본가에서 살았던 때는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해 자주 방문했더랬다. 자취방이 생긴 후, 나만의 프라이빗한 공간이 생긴 후, 본트는 점점 나에게 짐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월세만 해도 110만 원. 부가세 별도다. 총 121만 원. 월마다 나의 월급을 쓸어가던, 나에겐 강도 같은 공간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월세 때문에 늘 난 돈이 없었고, 그래서 대출까지 받게 된 거였다. 하, 얼른 없애고 싶었는데 잘 됐다 싶다. 하, 그런데도 이 찝찝하고 아쉬운 감정은 무엇일까?
이 공간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의 나, 열정 넘치던 2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다. 그 열정과 패기로 '망해도 어렸을 때 망해봐야지!' 하는 생각에 덜컥 구했던 공간이었다. 사업을 크게 해서 망하진 않았지만, 정말로 이 공간 때문에 돈이 궁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것을 나는 버틸 힘이 없었다. 내 열정보다 상황에 대한 압박이 훨씬 컸고, 나는 점점 작아졌다.
사실 이 공간은 나에게 베타 테스트 같은 공간이었다. 마케터를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고 호기롭게 외쳤던, 하지만 자금의 한계로 10평 정도 되는 공간으로 '시작'했던 것이었다. 2년 동안 본트에서 열심히 이것저것 테스트하고 2년을 마치는 2023년 5월에 더 큰 공간으로 확장하려고 했다. 그 원대했던 꿈을 접게 된 것이다. 그래서 찝찝하고 아쉬운 감정이 있는 것 같다.
공간 운영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상업적인 공간으로 처음부터 기획해 시작했으면 달랐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공간도 사람 같아서 신경을 조금만 덜 쓰면, 금방 티가 났다. 변기에 곰팡이가 생기고, 바닥은 머리카락투성이였다. 그렇게 내 공간은 점점 병들어갔다. 그래서 최소한의 청소는 꾸준히 해 왔다. 더러운 공간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발악했다.
그런데도 내가 공간을 접으면서, 큰 아쉬움이 남지 않는 이유가 있다. '상가'라는 공간의 생태계를 파악하게 되었다. 또한, 나의 지출의 일정 % 가 넘으면 나의 재정 상황에 큰 문제가 생긴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안락하고 꾸준히 존재하는 공간이 주는 힘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공간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비교적 이 공간에 초대해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공간을 마치게 되었다는 기쁨도 찰나, 나는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되었다. '제2의 공간을 아예 없앨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내 집기는 너무도 많이 남았고, 공간이 필요한 이유 또한 생겨버렸다. 그래서 집 혹은 회사 근처에 작은 공간을 싸게 임대해 일부은 살려둘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월세는 40만 원이 넘지 않도록, 아무것도 없는 작은 원룸 정도면 내가 원하는 최소한의 공간은 또 예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계속 고민하며, 일단 부동산 플랫폼을 살펴보고 있다. 하, 나 어떻게 해야 하지?
7월 말까지 본트를 써야 해서, 그전에는 무조건 결정해야 한다. 만약 작은 공간을 계약하게 된다면, 빠르게 계약하고 이사도 해야 한다. 으악!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본트라는 공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그니까 가성비 있게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은 가성비 넘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회사 바로 앞에 공간을 구해, 점심시간에 회사 구성원들과 밥을 해 먹을 수도 있게 하고 싶다.
흠, 나만의 아지트, 나와 친한 구성원들만 올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들어볼까? 아, 왜 또 나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집이 먼 친구들이 함께 회식하고 자도 될만한 공간을 만들어볼까? 마지막 회식 장소 같은 느낌으로 꾸며볼까? 나래바처럼 주디의 주막을 한번 만들어볼까? 허허, 또 꿈을 꾸기 시작한 나. 또 일을 저지르겠구나!
아무튼 시간이 정말 없다. 원래 계획하던 사이드 프로젝트도 잠시 접고, 정리와 결정을 해야 할 시기다. 딱 한 달, 아니 한 달도 안 남았다! 올바른 결정일까? 또 한 번 공간의 부담을 지는 것이 맞을까?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난 또 계약해 버릴 것만 같다. (나란 인간은 참...!)
이토록 정신없는 글을 쓰는 건, 내가 실제로 정신이 반쯤 나갔기 때문이다. 일단 나의 물건, 가구, 기기 리스트를 만들고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나서 공간은 한 번 더 고민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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