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여유 없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아픔이 찾아오면, 세상을 있는 힘껏 비난하고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냐고 따지기도 했다. 작든 크든 아픔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살았다.
사소한 것들에도 그랬다. 출근 버스가 15분 뒤에 도착한다고 하면, 어김없이 버스 회사를 (속으로) 비난했다. '아... 왜 늦게 오는 거야! 빨리 가고 싶은데! 짜증 난다!' 그리고 그 하루는 굉장히 재수 없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빠르게 잊어버리는 성격이라 1시간 정도 지나면, 기억조차 나진 않았지만...
길을 걷다 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은 어떨까? 길에 (속으로) 화풀이하고, 그날은 정말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사회화된 인간이라 티는 잘 내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의 나는 전보다 훨씬 '여유로운' 사람이 된 것 같다. 어떤 계기였는지, 혹은 서서히 변화한 건지 잘 모르겠다. 예전의 나보다 어느 정도의 시련에는 아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한층 더 여유로워 보이기도 한 것 같다.
이런 결과는 한 생각에서 시작됐다. '인생 길고, 내 인생에 무조건 시련은 온다.' 사는 동안, 무조건 시련은 찾아온다고 인정하고부터 나는 조금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내 기준에서 버스가 늦더라도, 내 인생에서 버스가 늦는 건 무조건 마주할 일이고, 그게 오늘일 뿐이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러면 전에는 무조건 튀어나왔던 분노의 마음은 나올 틈이 없고, 그냥 버스가 오기 전 15분 동안 뭘 할지 고민한다. 아마 길 가다 넘어져도 그럴 것 같다. 인생에서 몇 번은 무조건 넘어지겠지! 그중 오늘이 한 번일 뿐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내가 바뀌었다고 뚜렷하게 느꼈던 최근의 한 사건(?), 불과 며칠 전 있었던 일이다. 사이드 프로젝트 모임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게 된 바람에 대중교통은 모두 끊겼고 반드시 택시를 타야 했다. 장마의 시작이었기에 비가 대차게 내리던 날이었다. 몇십 분 동안 택시는 번번이 나를 거절하며 절대 잡히지 않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패닉 상태로 속에는 분노가 가득 찼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택시가 잡히지 않는 상황을 인정했고, 집에 갈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다. 다행히 야간 버스가 다녔고, 버스 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택시로는 10분 남짓, 버스로는 1시간 걸리는 귀갓길.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다행히 '타다'가 잡혔고 감사하게도 집에 빠르게 귀가할 수 있었다. (물론 택시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치면 1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이렇게 비 오고 막막한 상황에 엄청난 감정 변화를 겪지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정말 많이 놀랐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기특하기도 했다.
'무조건 오는 시련의 크기'를 점점 키우며 나는 더 성숙해지는 것 같다. 전에는 세상에서 나에게 작은 스크래치라도 주면 으르렁댔다면, 지금은 어떠한 스크래치도 받아들이는 편인 것 같다. (나도 사람이라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스크래치에 무너지기도 한다)
삶에는 무조건, 언젠가, 시련이 온다. 내가 원하는 때에 오지 않기 때문에, 언제 오든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흠, 어찌 보면 서프라이즈 가득한 이 세상에 조금은 더 적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힘든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살면서 시련은 무조건 오고, 그게 지금일 뿐이라고. 인생 그래프의 높낮이에서 지금은 조금 낮은 곳에 있을 뿐. 인생은 그 그래프 높낮이의 평균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어떠한 인생에도 평균은 있고, 늘 행복만 있는 삶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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