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봇 Pivot의 정의
"피봇 Pivot이란? 농구에서 온 스포츠 용어더라구요.
농구 경기에서 공을 선점한 선수가 공을 빼앗으려는 다른 선수를 피하기 위해서 한 발은 지탱한 채 다른 발을 계속해서 옮겨 딛는 플레이를 피봇이라 불러요.
저는 이 정의도 와닿더라고요. Pivot is a change in strategy without a change in vision."
_ LBCC <피봇팅의 순간들> 반야님 세션
오늘... 일요일, 찐 연휴의 끝자락. LBCC 세션에 처음 참여했다. 반야님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김반야님 : 지그재그 콘텐츠 마케팅팀 리드)
주제는? 피봇팅의 순간들. 집에 돌아와 뉴스레터 주제를 생각했다. 솔직히 이번 연휴 때 진짜 잘 쉬어서, 그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반야님 세션을 들으면서, 다시 일 모드로 전환하기 위해 커리어 피봇팅의 순간들을 담아보고자 한다.
커리어 피봇팅? 솔직히 이런 용어도 모르고... 이곳저곳으로 이직했던 나.
하지만, 내 선택들은? 피봇팅의 정의와 맞닿아 있었다. "한 발은 지탱한 채 다른 발을 계속해서 옮겨 딛는 플레이"
내 커리어 피봇팅에는? 존경하는 리더들의 말들이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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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회사의 대표님, "PD도 해보는 거 어때?"
*1~2년차, C채널 PD/SNS 관리자
시대를 너무 앞서가서 실패했던, 내 첫 회사에서의 일화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TMI. 왜 시대를 너무 앞서갔냐면... 10년 전에 세로형 숏폼 콘텐츠를 개발했고, 당시 모든 SNS는 가로형 포맷이던 시절이다. (5년 전쯤 했으면 대박났을 듯...)
첫 커리어는? SNS 채널 관리자. 지금은 많이 사라진 직종이다.
SNS 채널 : 페북, 인스타, 유튜브 등 콘텐츠 기획/제작은 하지 않고, 업로드, 데이터 분석, 팔로워와 소통 같은 채널 관리 업무였다.
하루 3개의 영상을 올리고, 한달에 최소 100편의 영상을 보고 멘트 쓰고, 분석하던 시절이라 감이 좋았다.
그래서, 대표님의 신뢰를 가득 받던 시절. 어느 날 대표님께서 제안하셨다.
"효정아, PD도 해보는 거 어때? 너가 채널 관리하다보니 감이 제일 좋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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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에는 사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당시 대표님은... PD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에게 그들의 경쟁상대가 되어주라고 말했다. OK 해볼게요.
이 선택은 나에게 엄청난 커리어로 남았다. 영상 기획? 제작? 1도 몰랐던 풋내기가...
평균 10만 회, 100만... 200만...
그 이상의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내기까지. 끝까지 해내려고 부지런히 배웠다. (물론, 당시엔 콘텐츠 생산자가 지금보다 적어 조회수가 훨씬 잘 나오던 시기였다.)
당시 대표님이 해주셨던 다른 말 또한, 나의 이직 기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효정아, 요즘 미국 애들은 어떻게 이직하는지 알아?
무기를 장착하듯이 이직하더라. A 회사에서 A 무기 장착하고, B 회사에서 B 무기 장착하면서 이직해. 너도 꼭 이직할 때 그렇게 해보렴."
잦은 이직은 독이 될 때도 있지만, '이직해야 할 때'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장착할 무기가 없을 때'
사회 초년생 때 들었던 이직의 기준. 지금까지도 나에게 남은 '기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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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를 넘어, 꿈꿨던 직업. '마케터가 되어볼까?'
*3년차, 파우더룸 마케팅팀 매니저
첫 회사는 망했다. 명백히. 시대를 너무 앞서갔고, 당시 경쟁자들보다 못했다. 회사가 문 닫는 날? 나도 문 닫고 나왔다.
가장 잘 팔리던 3년 차였던 나. 지원했던 회사들에 대부분 붙었다. 무신사... 티몬... 등등... (개인생각 : 3년 차때는 일머리, 열정만 있으면 이직 잘 됨 3년 차까지는 업의 기술만 제대로 배워도 성공이라 생각함)
하지만, 내가 선택한 회사는? '마케터'로 입사할 수 있는 곳이었다.
대학생 시절부터 '마케터'가 되고 싶었다. 이유는 기억 안 나지만... 마케팅 수업이 가장 재밌었다.
여기서, 커리어 피봇팅이 한번 더 일어난다. 채널 관리자 → PD PD → 퍼포먼스 마케터
커머스 플랫폼의 퍼포먼스 마케터로 일하며, 기존에 배웠던 SNS 노하우에 더해 퍼포먼스 마케터가 되었다.
자사 SNS부터 광고 플랫폼까지. 모두 혼자 관리했던 때.
퍼포먼스 마케팅을 잘하고 싶어서, 온갖 강의를 들으러 다녔던 시기. 일주일에 2번씩은 꼭 퇴근하고 수업을 들으러 갔다.
퍼포먼스 마케팅부터 그로스 해킹까지.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열심히 배우고 실천했던 시기.
당시엔 몰랐지만, 이 때 배웠던 개념을 아직까지 잘 써먹는다. 특히 <그로스 해킹>.
채널 관리자 → PD → 퍼포먼스 마케터로 연결된 마케터로서 첫 도약했던 커리어 피봇팅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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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운더 마케터. "마케팅팀 팀장이 되어주세요."
*4~6년차, 스윗밸런스 마케팅팀 팀장
이직해야할 때를 느꼈을 때, 스스로 혼란스러웠다.
'아... 커리어 망쳤네...'
지금은 좋은 커리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 3년 차 였던 나는 커리어가 꼬였다고 생각했다.
SNS도 해보고, PD도 해보고, 퍼포먼스 마케팅도 해보고... 찔끔찔끔 해서... 하나를 깊게 파지 않아서... 지원할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때, 한 회사의 대표님에게 면접 제안이 왔다. "효정님, 저희랑 면접 한 번 보실래요?"
면접을 안 본지 너무 오래됐던 나는 면접 연습할 겸 승낙했다.
이 회사는... 나의 3번째 회사가 된다.
마케팅팀 팀장 제안.
처음엔 헉... 했다...
3년 커리어 중에 2년을 팀장으로 일하긴 했으나 이 팀장 자리는 실력보다... 선임들이 퇴사하면서 자연스럽게 넘어왔던 자리기도 했으니까.
알지도 못했던 회사에 입사한 이유는? 대표님의 눈빛 하나였다. 후줄근한 옷차림에도 눈빛 하나는 살아있었다.
이 사람과 함께 일한다면? 내 눈빛도 반짝반짝 빛날거라 생각했다.
당시, 대표님께 나를 왜 뽑았냐고 물었다. "효정님,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요. 효정님은 시장에서 너무 저평가 되어 있었고, 솔직히 가성비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10년 차 마케터도 후보에 있었거든요? 근데 연봉도 높고 조직문화도 안 맞을 것 같았어요.
효정님은?
3년 차여서 연봉은 그보다 훨씬 낮은데 더 잘 해낼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뽑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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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한테 가성비라니! 당시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될 뻔 했지만, 채용 시장에선 내가 상품이니 최고의 칭찬이었다.
마케팅팀 팀장이 되면서, 마케팅이라 불리는 일들을 모조리 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생겼다. (야호)
돌아보면? 내가 가장 신나게 일했던 시기다.
브랜드 마케팅 파트, 그로스 마케팅 파트를 나눠 양쪽 파트를 모두 리드하며 팀을 꾸려갔다. 올라운더 마케터가 되는 순간이었다.
추가로, '리더'에 대한 공부까지 더해져... 가장 환상적이었던 학습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초보 리더로서 수많은 실수, 실패를 했고 마케터로서도 똑같았다.
하지만, 내가 시도하는 것들을 무한하게 지원해주신 대표님 덕분에 원없이 일했다. 행복했다.
TMI. 당시 대표님은 나에게 창업의 꿈을 심어줬다. 이 꿈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효정님은 창업해야 해요. 창업하면 가장 크게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책임지는만큼 성장하게 되니까요.
창업할 땐 3가지가 있어야 해요. 1) 아이템 : 시장을 베이스로 한 2) 팀 : 팀을 꾸리고 이끌어가는 3) 돈 : 돈 굴러가는 세계를 알아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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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을 몰랐던 나, "현장에서 일해볼래?"
*7년차~현재, TRUS PARTNER
첫 회사 선배이자 지금까지도 나의 멋진 선배. 도이 언니가 한 사람을 소개해줬다.
너가 진~짜 좋아할만한 사람이라면서. 그 사람이? 지금 함께 일하는 소정님이다. (*소정님 : TRUS 디렉터이자 러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녀가 이끄는 학습 커뮤니티에 들어가, 같이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의 다음은? TRUS라는 회사에 가야겠다!!!
규모가 큰 회사는 아니다. 하지만 무기를 장착할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창업에 필요한 3가지. 아이템, 팀, 돈...
여기서.... 팀, 돈은 내가 잘 못하는 분야였다.
TRUS는? 팀을 정말 잘 꾸려가는 회사였고, 대표 황호님은 돈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트루스에 없는 자리를 만들어가며 입사했다.
트루스에 의뢰가 들어왔다. 데스커 라운지 프로젝트였다. (*데스커 브랜드의 공간을 기획/운영하는 프로젝트)
기획부터 운영까지 트루스가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공간이 오픈하고 소정님은 제안했다. "효정아, 너는 고객을 몰라. 현장에서 일해보는 거 어때?"
7년 차 마케터였던 나에겐 약점이 있었다. 일찍 팀장이 되면서 실무와 멀어졌던 것.
컨펌만 하는 사람이 되었고, 스스로 실무는 못하게 된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던 소정님은 현장 일을 제안했다. 그렇게 나는 데스커 라운지 커넥터가 되었다.
현장 일이라고 해서? 운영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획, 운영, 마케팅까지 모든 것을 해야했다.
PM이자 리더로 일하면서, 고객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피부로 듣고, 그들의 고민을 통해 마케팅 (모객)도 제대로 할 수 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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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알게 된 건? 현장에 답이 있다. 멀리서 알 수 없던 고객의 찐~고민을 현장에서 바로바로 듣게 되니 속 시원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 지금까지도 나에게 유효한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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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확장하려면? "같이 러쉬해 볼래?"
*9년차~현재, TRUS & LUSH PARTNER
데스커와의 계약 종료 시점, 나와 호흡을 잘 맞췄다고 판단하신 황호님은?
이번에 자신도 러쉬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면서 자신의 어시스턴트를 해줄 수 있겠냐 제안했다.
당시, 나에게 생소했던 직업.
CEO ASSISTANT.
사실 '어시스턴트'라는 어감이 굉장히 싫었지만
이는 내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러쉬 프로젝트는 나에게 엄청난 무기를 장착해줄 것임을 직감했다. "최상위 리더의 시선으로 회사를 볼 수 있는"
TRUS 대표 소정님과 황호님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총괄전략책임자로 러쉬에 들어갔다.
1,300억 매출을 하는 회사 최상위 리더들의 어시스턴트를 한다는 건... 엄청난 기회였다.
왜냐하면...
나는 창업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의 기준들이 쌓이고 시야가 확장되면? 이후 창업할 때 큰 자산이 될 거라 확신했다.
실제로, 함께 일하면서 그들의 의사결정 과정도 보고 자료를 분석하는 등... 시야가 무한정 확장되고 있다.
예를 들면? 회계를 정말 싫어해서 피해다녔던 나는 숫자부터 제대로 뜯어봐야 한다는 황호님의 리드로 재무제표를 보고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70개의 매장을 총괄하는 리더분들과 일하며, 오프라인 리테일 생리부터 전략, 실행을 배우고 있다.
브랜드 본부 또한 깊게 침투하여 전략을 짜고, 기획부터 현장에서 함께 뛰고 있다.
몸이 3개라도 모자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어느 때보다 수많은 무기가 장착되는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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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 마케터 → CEO STAFF까지, 커리어 피봇팅의 순간들엔?
1) 좋은 리더들의 말이 있었다. 2) 때마다 방향을 명확히 하니, 선택이 쉬웠다. (ex. 마케터가 될거야, 창업을 할거야... 등)
피봇 Pivot 한 발은 지탱한 채 다른 발을 계속해서 옮겨 딛는 플레이
피봇의 정의처럼 나에게 지탱했던 한 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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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다 명확히 정했던 방향과 선택에 큰 도움을 줬던 리더들의 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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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번에는 긴 글을 써봤습니다! 끝까지 봐준 친구들 땡큐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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