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부터 '공식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공식적이라는 말은 내가 운동한다고 진짜로 말할 수 있는 정도라는 것이다. 뭐 대단한 구기 운동이나 PT를 시작했다는 건 아니다. 헬스장 6개월을 등록한 것뿐이다.
헬스장을 등록하기 전, 사소한 고민이 있었다. '다음 주~다다음 주까지 약속이 좀 많은데 그럼 운동을 못 갈 텐데 3주 뒤쯤 시작할까?' 했었다. 그래도 상담은 받아보자는 마음으로 퇴근하는 길에 집과 가장 가까운 헬스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흠, 시설은 낫 베드 아니고 베드. 아니 시설이 나쁘진 않았지만, 환기가 전혀 안 되는 공간이었다. 지하에 위치한 오래된 헬스장이었다. 그래도 골프도 가르치는 나름 프로그램이 괜찮은 헬스장이기도 했다. 사실 요가, 필라테스 같은 GX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으나, 운영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을 감추고, 3개월 정도로 헬스를 등록하려고 했다.
아니 근데, 3개월에 21만 원, 6개월에 28만 원이었다. 당연히 난 6개월을 등록했다! 자주 가면 이득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6개월 이용이기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3주 뒤든, 지금부터든 헬스를 시작하는 일자가 중요하진 않았다. 그래서 그 당일부터 시작하는 걸로 결제해버렸다.
헬스장 직원은 바로 운동하겠냐고 물었고, 나는 집에 갔다가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갑자기 들뜬 나는 샐러드를 허겁지겁 대충 먹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첫날은 1시간 동안 유산소 운동만 했다. 물론 지금도 유산소 운동만 하고 있다. 걷고, 달리고, 계단을 오르고, 폼롤러로 스트레칭하고... 유산소 운동이 늘 재미없었던 내가 갑자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건 나만의 규칙을 정하고부터였다.
러닝머신에서 N8분이 시작되면, 2분 동안 뛰는 것이다. 8분 동안은 걷고, 2분은 뛰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금방 40~50분이 지나간다. 아마 체력이 조금 늘었다고 생각되면 뛰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는 듯한 느낌의 스텝퍼 머신에 가서 짧게 허벅지를 불태운다. 그리고는 요가 매트와 폼롤러가 있는 GX 룸에 가서 10분 넘게 몸을 이완시키고 풀어준 후 집으로 돌아온다.
아직도 첫날의 개운함을 잊을 수 없다. 평소 목부터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 늘 근육통을 달고 사는 나, 심지어 가끔은 머리까지 아픈 나다. 러닝머신을 탈 때 상반신은 최대한 힘을 빼고, 하반신에만 힘을 꽉 주고 터덜터덜한 자세로 걷고 뛰고를 반복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어깨와 목을 만져보니 딱딱한 느낌은 온데간데없어졌고 머리도 개운한 걸 느꼈던 것 같다. 그 느낌이 좋아 아직까지도 러닝머신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날이 딱 좋은 그런 날은 집 앞의 안양천을 걷고 뛰었다. 러닝머신에서보다 훨씬 뛰는 게 힘들어 연속으로 30초밖에 뛰지 못하는 걸 보고, 바람의 저항 등의 외부 요인이 있으면 뛰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걸 내심 깨닫게 되었다.
생각보다 안양천은 정말로 좋았다. 본가는 은평구에 위치해 불광천이 있는데 불광천은 일직선 코스라서 물가는 잘 보이지만, 다이나믹한 느낌은 별로 없다. 그에 비해 안양천은 온갖 종류의 꽃이 모여있고, 조금 걷다 보면 축구장이, 또 뛰다 보면 농구장이, 또 걷다 보면 작은 구름다리가, 또 걷다 보면 예쁜 정자가 나오기도 한다. 안양천은 그래서 '운동할 맛 나는 곳'인 것 같다.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건, 여행 이후 깨닫게 된 나의 외모 자존감 상태였다. 평소 살이 찌지 않았을 땐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나였다. 하지만 살이 찐 이후로는 사진을 찍는 빈도가 줄고, 사진을 어떨 때는 피하기도 했다. 지금의 나를 어떠한 스마트폰에도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팀원들과 함께 여수 여행을 갔을 때 그걸 제대로 느꼈던 것 같다. 같이 찍는 사진은 정말 좋아했으나 홀로 찍는 독사진은 정말로 꺼려졌다. 딱히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찍지 않았다. 함께 찍는 사진은 다 남는 추억이기에 찍는 것이 좋았으나, 돌이켜보니 나에게 독사진은 나의 현 상태가 만족스럽고, 외모 자존감이 나쁘지 않은 상태에서 찍게 되는 것 같더라.
그래도 나에게 높은 목표로 부담을 주지 않기로 했다. 체중을 얼마나 감량한다든지, 하루 한 끼는 꼭 다이어트식으로 먹는다든지 하는 목표는 세우지 않기로 하였다. 늘 그런 부담에 실패했던 것이 학습되었던 터라 살아지는 대로 내 방식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핑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녁 약속이 있으니까, 오늘 운동은 못하겠네' '오늘은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치킨 먹어야겠네' 같은 핑계들 말이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운영한다. 그래서 오후에 약속이 있다면, 새벽에 헬스장을 가면 된다. 또한 헬스장이 닫더라도 안양천을 다녀오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자기합리화를 하는 걸 방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먹고 싶은 게 있을 때는 스트레스 받지 않게 시켜먹고, 대신 운동을 더 열심히 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놀랍게도 1~2주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체중이 2kg 정도 감량됐다. 신기한 건, 운동을 하니 다시 찌지 않더라. 무엇을 어떻게 먹던 간에 먹은 만큼 운동하는 걸 내 습관으로 만들어보고자 한다. 그렇게 나는 오후 약속이 있는 내일도 오전에 운동하고 약속을 나가려 한다.
TMI. 지금 나에게 '운동'은 성취감을 주거나 스트레스를 낮춰주거나 하진 않는다. 그냥 하루에 정말 좋은 일을 한 번씩 하는 기분이 든다. 요즘 큰 스트레스가 없기도 한데, 이상하게 하루에 한 번 운동할 때면 하루에 한 번 기부를 하는 듯한 이상한 뿌듯함이 올라온다. 성취감과 스트레스 해소와는 조금 다른, 내가 좋은 일을 했을 때의 뿌듯함을 요즘 느끼고 있다.
|